떠돌이 된 남한 여의사, 밤마다 병원게시물 떼내다 덜미
지난 15일 밤 서울 종로구 연건동의 서울대학병원. 한 중년 여성이 각층을 돌아다니며 게시판이나 벽에 붙은 안내문과 공지사항 등 게시물을 닥치는 대로 떼어내 핸드백에 넣고 있었다. 가방에 다 넣지 못하자 손에 한 움큼 들고 다녔다. 병원 경비원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 혜화경찰서 소속 경찰관은 여성을 일단 붙잡았다. 깔끔한 옷차림의 여성은 병원에서 챙겨온 전문의학용어가 포함된 영어 서류도 술술 읽었다. 하지만 경찰은 잠시 대화를 나눠 보고는 그의 심리 상태가 온전치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이씨가 서울대병원을 돌아다니며 모은 인쇄물은 100장이 넘었다. A4 용지부터 전지 크기까지 다양했다. ‘왜 그랬느냐’는 경찰의 질문에 이씨는 “그냥 모든 것을 읽어 보고 싶었다”고 답했다. 경찰은 16일 오전 1시쯤 서산에 있는 이씨의 언니와 동생에게 연락했지만 당장은 데려가기 어렵다는 답이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혜화경찰서 관내 파출소에서 밤을 보낸 뒤 오전 8시쯤 여동생과 함께 떠났다. 경찰 관계자는 “남편이 살아 있거나 병원이 멀쩡했다면 가족들이 저렇게 대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심현희 기자 macduck@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