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오전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 여자 기숙사 목욕탕에서 보안업체 직원들이 몰래카메라 설치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2016.8.31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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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 외에 별다른 증거가 없었던 1심 때와 달리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몰카가 제대로 설치됐는지 확인하는 피고인 정모(27)씨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증거로 제출됐기 때문이다.
수원지법 형사항소6부(부장 김익환)는 17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수영 국가대표 출신 정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또 40시간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5년 취업 제한을 명령했다.
같은 혐의로 기소된 최모(29)씨 등 다른 선수 4명에 대해서는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유지했다.
정씨는 2009~2013년 6차례에 걸쳐 경기도의 한 체육 고교와 진천선수촌의 여자 수영선수 탈의실에 만년필 형태의 몰카를 설치하는 수법으로 여자 선수들의 탈의 장면을 촬영한 혐의로 2016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최씨 등 다른 선수들은 정씨가 여자 선수들이 없는 시간을 노려 몰카를 설치하는 동안 탈의실 밖에서 망을 보는 등의 방법으로 범행을 도운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이 사건의 물적 증거라고 할 수 있는 몰카 영상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정씨의 자백과 몰카 영상을 봤다는 정씨 지인 진술 등을 근거로 정씨와 공범 등 총 5명을 기소했다.
그러나 1심은 2017년 12월 정씨의 자백을 보강할 추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소된 수영선수 5명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해 6월 시작된 항소심도 비슷한 양상으로 재판이 흘러가던 중 검찰이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검찰은 지난해 9월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입수한 13분 38초 분량의 영상이 담긴 CD 1장을 항소심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했다.
해당 영상에는 정씨가 몰카를 제대로 설치했는지 확인하는 장면을 포함해 복수의 여자 선수 모습이 담겨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 피고인은 여자 선수들의 나체를 촬영해 함께 운동한 선수들에게 배신감과 치유하기 어려운 상처를 남겼다”면서 “다만 범행 일체를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동종 범죄로 처벌받은 전력이 없는 점, 일부 범죄는 청소년기에 이뤄진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다른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정씨의 진술에 신빙성이 낮고 별다른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이유로 들며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정씨가 최씨도 가담했다고 진술한 진천선수촌 범행과 관련, 최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진천선수촌 탈의실은 문이 2개여서 특정 출입구에서 망을 봐도 다른 출입구에서 사람이 들어올 수 있고, 곳곳에 다수의 CCTV가 설치된 점, 여러 선수와 코치가 오가는 점 등에 미뤄볼 때 해당 범죄에 최 피고인이 가담했다는 정 피고인의 진술이 증명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이로써 2년 넘게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며 숱한 논란과 공방이 오갔던 ‘수영선수 몰카’ 사건은 항소심 재판에서 정씨에 유죄가 선고되면서 일단락됐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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