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줍던 70대 할머니 정규직 되다…사회적기업의 일자리 실험

폐지 줍던 70대 할머니 정규직 되다…사회적기업의 일자리 실험

신융아 기자
신융아 기자
입력 2022-02-24 17:37
업데이트 2022-02-24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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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청년 함께 일하는 ‘신이어마켙’

폐지수거·빈곤 노인에 창작활동 지원

저작권료·제품 포장으로 일자리 창출

수익금 10% 후원…노인 인식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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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어마켙’  프로젝트 노인들
‘신이어마켙’ 프로젝트 노인들 ‘신이어마켙’ 프로젝트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화투를 그리고 있다. 신융아 기자
서울 강동구 강동종합사회복지관에서는 지난 23일 다섯 명의 7080 할머니가 화투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말엽(86) 할머니는 “우리가 어서(어디서) 이런 걸 하겠어. 화투는 좀 쳤는디 그려 보는 건 처음이여”라며 손에 쥔 그림펜으로 ‘8월 공산’(空山·공산명월)을 쓱쓱 그렸다.

옆에 있던 김화자(76) 할머니는 “화투에도 월별로 사연이 다 있어”라고 운을 뗀 뒤 “젊을 적엔 그림을 좀 그렸는데 지금은 손도 떨리고 자신이 없어. 나이 먹어 세상에 쓸모도 없는 사람을 불러 주니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폐지 수거로 생활하거나 저소득·빈곤 노인에게 그림 그리기 활동을 지원하고 이를 바탕으로 디자인한 엽서, 달력, 스티커, 노트 등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노인 일자리 프로젝트 ‘신이어마켙’이 고령자의 새로운 일자리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그림을 제품화해 1점당 1만~5만원의 저작권료를 지급함으로써 첫 번째 일자리를 만들고 제품을 포장할 때 최저임금을 주는 2차 일자리를 제공한다. 또 올해부터는 제품을 판매한 수익금(순이익)의 10%를 다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노인에게 후원금 형태로 돌려준다. 현재 16명이 참여하고 있다.

폐지수거, 돌봄...노인 일자리 이것 밖에 없나요?
그동안 노인 일자리는 대개 폐지 수거나 노인 돌봄, 순찰 등 저임금 단순 노무에 한정돼 있어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생계 보장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용률은 2020년 34.1%로 증가 추세지만 66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중위소득 50% 미만)은 43.2%(2019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심각하다.

이 프로젝트를 만든 사회적기업 아립앤위립은 단순히 일자리 제공을 넘어 노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직접 고용으로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신이어마켙’ 강옥자 할머니
‘신이어마켙’ 강옥자 할머니 ‘신이어마켙’의 크리에이터로 정규 채용된 강옥자 할머니가 자신이 그린 화투 그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신융아 기자
2018년부터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온 강옥자(76) 할머니는 지난해 9월 이 회사에 정규 직원으로 채용됐다. 공공 일자리로 폐지 수거를 하며 월 27만원씩을 받던 강 할머니는 지난해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이를 거절하고 ‘샐러리맨’을 택한 것이다.

할머니의 직함은 ‘크리에이터’로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신이어마켙 인스타그램을 확인한 뒤 댓글을 달고 청년들이 잘 모르는 절기(節氣)에 관한 에피소드를 준비하거나 그림을 그리며 다음 프로젝트를 구상한다.
옥자 할머니의 그림 엽서
옥자 할머니의 그림 엽서 그림 엽서로 나온 강옥자 할머니의 ‘건강 메시지’. 아립앤위립 제공
강 할머니는 “이 나이에 출근을 한다니 기쁘고 영광”이라며 “일을 하다 보니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욕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노인들이 만든 제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입소문을 타며 젊은층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 할머니들의 그림이 담긴 절기달력은 순식간에 소진돼 3차 판매까지 1200부가 나갔다.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 심현보 아립앤위립 대표가 ‘신이어마켙’ 참여 노인들에게 미술 활동을 설명하고 있다. 심 대표는 “어르신들의 놀이문화인 화투를 제작하면서 화투에 얽힌 이야기를 듣고 청년들과 공감대를 형성해 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친할머니가 폐지 줍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심현보(31) 아립앤위립 대표는 “어르신에게는 생계 문제도 있지만 적당한 일거리가 필요했던 것”이라며 “노인과 청년이 소통할 수 있는 제품과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정기적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신융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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