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대왕의 편지를 모은 어찰집을 읽습니다. 혼자서 킥킥거릴 만한 대목이 많습니다. 다혈질이었던 정조는 측근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성리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김매순을 “이런 젖비린내나 풍기는 놈이 감히….”라고 질책합니다. 그런가 하면 시정잡배가 하듯 “팔뚝을 걷어붙이고 눈알을 부라리며….”라고 격정을 토로하기도 하지요. 그뿐이 아닙니다. 김이영에게는 “동서도 분간 못 하는 놈이 감히 주둥아릴 놀린다.”며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러고는 스스로도 무안했던지 ‘껄껄(呵呵)’하고 웃어넘기기도 합니다. 더한 파격도 있습니다. 정조는 가끔 스스로를 일러 “이놈이(此漢)….”라고도 편지에 적습니다. 감히 우러러보기도 두려운 성상이지만 일상의 모습은 여지없는 장삼이사요, 갑남을녀의 풍모 그대롭니다. 그런 정조의 일상에서 ‘거침없이 사는 건강법’을 곁눈질합니다. 비록 여항에 묻혀 살지만, 그래서 사방에 눈치 볼 사람 많지만 욕 나오면 욕하고 사는 게 잘사는 건지도 모릅니다. 꾹꾹 누르고 참기만 하면 화가 쌓여 병이 될 테니까요. 성군이었던 정조대왕이 입에 욕을 달고 사는데 우리가 속 터지게 군자연하면서 병을 키울 일 없잖아요. 안 그래요?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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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2-08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