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지특파원의 밴쿠버 인사이드] 고개숙인 이호석에 따뜻한 격려를

[조은지특파원의 밴쿠버 인사이드] 고개숙인 이호석에 따뜻한 격려를

입력 2010-02-16 00:00
업데이트 2010-0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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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1500m 쇼트트랙에서 올림픽 첫 금메달이 나왔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다. 금메달의 기쁨보다 싹쓸이를 놓친 아쉬움이 더 큰 탓일 것이다. 막판 스퍼트에서 파고들기를 시도하다 2위를 달리던 성시백(23·용인시청)을 넘어뜨린 이호석(24·고양시청)에게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고 있다. 쇼트트랙을 다룬 인터넷 기사마다 그에 대한 수백 개의 악플이 달렸고, 개인 홈페이지는 한때 다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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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삼총사?      (밴쿠버=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4일(한국시간)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결승에서 이정수를 뒤따르던 성시백과 이호석이 결승점을 앞에 두고 넘어졌다. 경기 후 이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 뒤따라 오던 미국의 오노와 셀스키가 은, 동을 차지했다.
<올림픽> 삼총사?
(밴쿠버=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4일(한국시간)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 결승에서 이정수를 뒤따르던 성시백과 이호석이 결승점을 앞에 두고 넘어졌다. 경기 후 이들이 서로 인사(?)를 하고 있다. 뒤따라 오던 미국의 오노와 셀스키가 은, 동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이호석 개인에 대한 비난은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국민에게는 ‘한국의 금메달’이지만 올림픽만 바라보고 4년간 피땀 흘린 선수에게는 이왕이면 내가 주인공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그는 ‘팀의 대들보’이자 ‘맏형’이었다. 그런 그가 막판에 우승을 노리고 특기를 구사하다 실수를 한 것이다. 동료도 “종목 특성상 자주 있는 일”이라며 이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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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만 넘어져 다행      (밴쿠버=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4일(한국시간)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성시백과 이호석이 결승점을 앞에 두고 넘어지고 있다. 이정수 금메달. 금은동 석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둘만 넘어져 다행
(밴쿠버=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14일(한국시간) 밴쿠버 퍼시픽 콜리세움에서 열린 동계올림픽 남자 1500m 쇼트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성시백과 이호석이 결승점을 앞에 두고 넘어지고 있다. 이정수 금메달. 금은동 석권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한국은 대표팀 동료가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다. 선수 모두가 우승후보이다 보니 코칭스태프도 경기 마무리에 대한 세세한 작전 지시를 할 수 없는 실정이다. 그저 어깨를 두드리며 “너희끼리 엉키지만 말아라.”고 당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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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움에서 진행된  2010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 훈련을 마친 이호석(왼쪽)이 관중석에 있던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씨를 찾아 인사를 하자 어머니가 안아주고 있다. 이후에는 찾아온 아들의 얼굴을 만져주시는 홍경희씨. 스포츠서울
15일(한국시간)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콜리시움에서 진행된 2010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 대표팀의 훈련. 훈련을 마친 이호석(왼쪽)이 관중석에 있던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씨를 찾아 인사를 하자 어머니가 안아주고 있다. 이후에는 찾아온 아들의 얼굴을 만져주시는 홍경희씨.
스포츠서울
이호석은 경기 뒤 고개를 푹 숙인 채 취재진을 스쳐갔다. 말을 걸기 힘들 정도로 참담한 표정이었다. 그 얼굴은 메달을 놓친 아쉬움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책은 물론, 자신 때문에 은메달을 놓친 성시백에 대한 미안함, 금메달을 따고도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는 이정수에 대한 민망함 때문이었다. 인터넷으로 성난 민심을 접한 뒤엔 충격으로 밤새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고 한다.

15일 있었던 공식훈련 때는 성시백과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선수들 앞에서 “미안하다.”고 공개사과했고, 성시백도 “괜찮다.”고 했지만 앙금을 풀기에 시간은 부족했다. 이호석은 경기장을 찾은 성시백의 어머니 홍경희(49)씨에게 머리를 숙였다. 홍씨는 “안 다쳤으니 괜찮다. 너도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다 잊고 남은 경기 잘해라.”며 포근히 안아줬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15여년을 지켜본 이호석이 “아들 같다.”고 했다. “어제 자정이 넘어 시백이한테 연락이 왔는데 ‘엄마, 나 괜찮아.’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물론 이호석을 두둔하는 게 아니다. 이젠 결과만 놓고 선수 개인을 비난하지 않는 성숙한 팬의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더욱이 이호석이 고개를 숙이기엔 아직 이르다. 500m와 1000m, 5000m 계주가 남았다. 이호석과 성시백이 함께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내고 시상대에 선다면 그보다 더 진한 감동은 없을 것이다. 지금 필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따뜻한 격려다.

zone4@seoul.co.kr

☞[2010 밴쿠버 동계올림픽 사진 보러가기]
2010-02-1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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