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지기 이웃 죽음으로 내몬 ‘층간소음’ 시비

10년지기 이웃 죽음으로 내몬 ‘층간소음’ 시비

입력 2013-05-14 00:00
수정 2013-05-1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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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처벌 규정 모호·피해 입증 어려워 갈등 되풀이

층간소음 시비가 10년간 아랫집에서 이웃으로 지낸 세입자 가족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14일 인천 부평경찰서에 따르면 부평구 십정동에 있는 일반주택 2층 집주인 A(72)씨와 1층 세입자 B(50)씨 사이에 층간소음 문제로 시비가 처음 붙은 건 1년 전쯤이다.

B씨가 체력 단련을 목적으로 1층 작은방 천장에 샌드백을 설치했고, 샌드백을 두드릴 때 울리는 진동과 소음이 2층에 사는 A씨의 신경을 건드렸다. 참다못한 A씨는 몇차례 아랫집에 주의를 당부했으나 ‘쿵쿵’거리는 소음은 그치질 않았다.

결국 1년간 쌓였던 갈등이 지난 13일 오후 폭발했다. A씨는 집에 들어가다가 계단에서 마주친 B씨에게 “왜 계속 시끄럽게 하느냐”고 재차 따졌다. B씨는 “그런 적이 없다”며 맞섰다.

B씨의 태연한 행동에 화가 난 A씨는 2층 자신의 집에서 50㎝ 길이의 등산용 손도끼를 가져와 휘둘렀고, B씨와 B씨 아내(50)가 각각 왼팔에 상처를 입었다.

화를 참지 못한 A씨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자신의 집으로 다시 올라가 휘발유가 든 플라스틱 통을 가지고 내려왔고, 휘발유를 1층 현관에 뿌린 뒤 라이터로 불을 질렀다.

불은 순식간에 주택 1층을 다 태우고 2층 일부를 그을린 뒤 40여 분만에 진압됐다.

그러나 안방에 있던 B씨의 딸(25)과 딸의 남자친구(24)가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A씨와 B씨가 나란히 위아래 층에 살던 2층짜리 단독주택은 지어진 지 십수년이 돼 층간소음에 취약했다. 더구나 이들이 살던 집은 최근 정부가 층간소음 해결을 위해 여러 대책을 내놓은 공동주택이 아닌 일반주택이었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주택이 오래된 데다 벽이 얇아 1층과 2층 간 소음이 큰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웃 주민들은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들의 갈등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주인과 고향이 같다고 밝힌 한 주민은 “층간소음 때문에 A씨가 세입자에게 집을 빼 줄 것을 여러차례 요구했다”며 “결국 갈등이 곪아터져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경찰은 B씨가 10여년 전쯤 A씨와 전세계약을 맺고 입주했으며, 1년 전 샌드백 설치 이전에는 큰 다툼없이 지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층간소음으로 인한 분쟁과 관련, 형사 처벌 규정이 모호해 과실 여부를 따져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소음·진동관리법은 공장, 공사장, 항공기 소음 등을 규제할 뿐 층간소음에 대해서는 별도의 처벌 규정이 없다. 경범죄특별법에 ‘인근 소란’ 혐의가 있지만, 규정이 모호하고 처벌도 3만원의 범칙금에 그친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층간소음으로 갈등이 생길 경우 피해자가 고의성 소음에 의한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사건 현장에서 현장감식을 벌였으며 2도 화상을 입어 진술이 어려운 A씨가 회복하는 대로 정확한 사건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다.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현주건조물 방화치사 등의 혐의로 A씨를 구속할 예정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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