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토종브랜드 톰보이·쌈지의 항변

부도 토종브랜드 톰보이·쌈지의 항변

입력 2010-07-21 00:00
업데이트 2010-07-21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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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SPA만 좋아하고, 주인님은 다른사업 외도, 제가 안 망하면 이상하죠”

저는 토종 패션 브랜드입니다. 얼마 전 ‘쌈지’와 ‘톰보이’란 오래된 두 친구를 부도라는 조금 끔찍한 이름으로 잃었습니다. 근데 저 좋아하시는 분들 계신가요?

요즘엔 자라, 망고, 유니클로, H&M 같은 외국 스파(SPA) 브랜드를 찾는 분들이 더 많죠. 스파는 ‘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의 약자입니다. 기획, 생산, 유통, 판매를 한꺼번에 해내는 브랜드를 가리키죠. 신제품을 디자인해서 매장 옷걸이에 걸리기까지 2주밖에 안 걸릴 정도로 빠른 게 스파 브랜드의 특징이에요.

한국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다는 서울 명동 거리는 이 외국 스파 브랜드의 천국입니다. 백화점과 흔히 로드숍이라고 하는 길거리 매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저로서는 안팎으로 가랑이가 찢어지는 형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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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은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 40%까지 판매 수수료를 뗍니다. 지하매장에서 가방, 지갑 등을 파는 브랜드의 한달 매출이 60억원일 정도로 백화점은 브랜드 생살 여탈권을 쥐고 있어요. 제 ‘절친’의 부도 원인 가운데 하나가 모 백화점과의 불화 때문이란 말도 들리더군요. 실제 그 친구는 백화점에서 매장을 뺀 이후로 브랜드 인지도가 확 떨어졌습니다.

물론 실질적인 부도 원인은 패션과 디자인을 사랑하셨던 주인님(오너)이 다른 사업으로 외도한 탓이 가장 큽니다. 스파와의 경쟁에서 뒤처진 데서 보듯 시시각각 변하는 트렌드를 빨리 따라잡지 못한 저희의 ‘못남’도 크지요. 하지만 저나 제 친구들이 천덕꾸러기가 된 게 비단 저희들 탓만일까요.

19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 폴로 셔츠와 게스 청바지가 ‘교복’으로 통용됐다면 요즘 아기 엄마들 사이에서는 구매대행(인터넷을 통해 외국 물건을 직접 사는 것)으로 수입 옷을 사는 게 유행입니다.

사실 중국에 가면 저희도 백화점에서 명품 대접을 받습니다. 송혜교, 전지현 같은 한류 스타가 우리 옷을 입고 화보를 한번 찍으면 매출이 엄청나죠. 그런데 한류 스타들도 레드 카펫이나 공항 같은 곳에서는 수입 브랜드만 입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예 토종이 아닌 척하고 태어나는 친구들도 많답니다. EXR(스포츠캐주얼 브랜드) 같은 친구가 대표적이지요. 토종 가운데 한국 이름을 가진 친구는 청바지를 전문으로 하는 ‘잠뱅이’ 정도가 거의 유일해요. 대부분 영어 이름이죠. 이것도 어찌 보면 수입 브랜드를 좋아하는 한국인의 기호에 맞추려는, 노력이라면 노력이겠지요.

사정이 이러니 2·3세 경영인들도 수입에만 열을 올립니다. 브랜드 하나 새로 만들어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기까지 드는 품을 생각하면 잘나가는 브랜드 하나 뚝딱 수입하는 게 훨씬 손쉽지요. 손익을 따져도 유리하니 덮어놓고 원망할 일도 못 됩니다. 하지만 저를 낳아주신 창업주들의 땀과 노력을 한번쯤은 곱씹어 봤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수입 브랜드 홍수 속에서도 30년 넘게 버텨오다 서른셋에 명(命)을 다하게 된 제 친구 ‘톰보이’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원들이 끝까지 남아 눈물겨운 재기 노력(법정관리 자청)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조건 저희가 최고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수입은 ‘간지’ 나고 우리는 ‘구리다’고 여기는 편견이 가끔씩 억울할 따름입니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0-07-21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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