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초월’ 채용 확산…문제는 없나

‘스펙초월’ 채용 확산…문제는 없나

입력 2014-03-23 00:00
업데이트 2014-03-2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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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채용비용·구직자 ‘시험범위’ 증가는 한계점

최근 ‘스펙초월’ 채용이 확산하는 것은 취업준비생들의 스펙 쌓기 열풍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토익점수나 자격증, 어학연수 등 이른바 ‘스펙 세트’를 얻으려고 들이는 돈과 시간은 이미 적정 수준을 넘어 ‘낭비’가 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종합 스펙 세트’ 필요없는 채용 많아질까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올해 상반기 인턴 70명 가운데 14명(20%)을 ‘스펙초월 전형’으로 뽑는다.

출신학교, 학점, 어학성적, 자격증 정보 없이 인·적성검사, 심층면접만으로 합격자를 가려낸다.

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 6곳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하기로 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2011년 4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입 채용 과정에서 가장 눈여겨보는 점은 ‘적극성 및 성취욕’(25.9%)이고 ‘조직 적응력 및 대인관계’(21.9%)가 그다음이었다. ‘전공 및 학점’(15.3%), ‘자격증 및 외국어 성적’(5.7%)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더 낮았다.

이에 비해 취업준비생이 스펙 쌓기에 쏟아붓는 시간적·물질적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취업준비생들은 일자리를 찾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요건으로 학벌·학점·토익점수를 ‘취업 스펙 3종 세트’로 칭한다.

어학연수와 자격증을 더하면 ‘5종 세트’가 구성되고, 공모전 입상과 인턴 경력을 얹으면 ‘7종 세트’가 만들어진다. 봉사활동이나 성형수술이 따라붙기도 한다.

청년층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2012년 대학 졸업자 35명의 이력서를 살펴본 결과, 대졸자 평균 스펙을 갖추려면 4천269만원이 필요했다.

대학 등록금(2천802만원)을 빼더라도 해외연수에 1천108만원, 토익같은 자격증 응시료와 학원비에 169만원이 들어갔다.

부족한 스펙을 쌓으려고 졸업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결국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해 고용노동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진흥공단,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17개 기관은 ‘스펙초월 채용문화 확산 업무협약’을 맺었다. 정부는 직무역량을 체계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평가모델을, 기업은 스펙초월 채용시스템을 만들 계획이다.

장영규 청년위원회 기업협력팀장은 “스펙을 아예 보지 말자는 게 아니라 직무와 무관한 스펙으로 지원자를 배제하지 말자는 것이다”라며 “업무협약을 다른 국내기업들로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시험범위만 늘린다” 지적도

스펙초월 채용은 학력·전공·연령 등 지원자격 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채용’, 서류전형 폐지, 지원자의 신상을 드러내지 않는 ‘블라인드 면접’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은행권에서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지원자격을 없앤 열린채용이 자리를 잡았다.

최근에는 토익점수 등을 입사지원서에 써넣지 않도록 하거나 인문학적 주제에 대한 견해를 전달하는 블라인드 심층 면접 등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양해진 전형 방식이 오히려 취업준비생에게 부담을 준다는 해석도 나온다.

지난해 9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구직자 74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42.4%(317명)가 스펙초월 채용이 취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답했다.

’어차피 기본 스펙을 갖춰야 할 것 같아서’(53%·복수응답)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막막해서’(38.8%)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우선 기업마다 채용방식이 확연하게 달라지면 지원자로서는 준비할 게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

실제로 은행권 안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보는 면접을 위해 독서를 많이 해야 유리한 전형이 있는가 하면, 정치·경제·사회 이슈에 대한 생각을 피력하거나 자기 소개를 준비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말 그대로 ‘시험범위’가 따로 없어 준비할 게 많아지는 셈이다.

7년차 은행원 최모(33)씨는 “입행 당시 지인 10명에게 일제히 문자메시지를 보내 10분 안에 답장이 몇 개 오는지 보는 ‘인적 네트워크’ 평가가 있었다”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다음해부터는 지원자들이 친구 10명을 ‘비상 대기’ 시켜놓고 면접을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회상했다.

객관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면접관으로 채용에 참여한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토론 전형에서 간단·명료하게 주장하는 것이 좋은지,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게 좋은지 정답은 없다”며 “이 때문에 면접관의 성향이 평가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기업들도 정성적 평가를 늘리려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막 도입된 스펙초월 채용에 한계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런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생산성본부의 강성모 박사는 “기업 입장에서는 채용 비용이 늘어나는 게 단점이고, 취업준비생은 ‘어쨌거나 스펙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가능성이 있는 친구들을 뽑으려면 서류심사로 지원자의 75%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최대한 문을 열어놓고 단계적으로 역량을 평가해야 한다”며 “지원자들도 취업지원센터 등을 통해 꾸준히 본인의 적성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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