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 브라보 유어 라이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문화마당] 브라보 유어 라이프/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입력 2010-10-14 00:00
업데이트 2010-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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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배우 신영균이 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한국영화 발전을 위하여 기부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부 목록에는 그가 40년간 소유했던 서울 명보아트홀과 제주 신영박물관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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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조혜정 중앙대 예술대학원 교수·영화평론가
전격적인 기부 소식에 처음에는 의외라는 시선이 대부분이었다. 그가 소문난 ‘구두쇠’라는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예전 대종상 심사 때 일이 생각난다. 그때 대종상 본심 후보작 심사를 명보극장에서 했는데, 그곳에 배우협회장과 영화인협회 이사장을 지낸 신영균씨가 들러 심사위원들의 노고(?)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게 되었다.

감사의 표시는 M체인의 햄버거. 심사위원들 중에는 원로·중견 인사들이 꽤 있었는데, ‘밥도 아닌 햄버거 한 쪽’에 역시 구두쇠라는 비아냥이 흘러나왔다. 밥이든 햄버거든 그 선의야 고마워해야 함이 마땅하지만, 알부자로 소문난 그가 영화계에 베푸는 데 인색하다는 저간의 인상이 그런 비아냥을 불러온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500억원이라는 큰 돈을 선뜻 투척한 것이다. 기부에 대한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해왔다는 전언은 그의 행위가 즉흥적인 게 아니라 나름대로 심사숙고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방증일 것이다. 그동안 자신을 두고 구두쇠니, 짠돌이니 하는 비아냥을 참아내기는 만만치 않았을 터다. 이미지와 명성, 인기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스타배우로서 호기를 부리며 사람들을 주변에 끌어 모으는 것이 어쩌면 더 쉬운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았고, 이제 그것을 기부라는 형태로 환원함으로써 자신의 이미지와 명예를 일신하게 되었다. 돈은 버는 것보다 어떻게 쓰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순간이다.

올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배우 김지미 회고전이 열렸다. 김지미는 1950년대 후반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배우로서 선명한 자취를 한국영화계에 남긴 인물이다. 과거 미인의 대명사였고, ‘동양의 리즈 테일러’라는 수식어를 단골로 달고 다닐 만큼 아름답고 화려한 배우였다. 그의 미모는 당시 엘리자베스 테일러나 오드리 헵번 같은 서구 배우들에게 향했던 한국 관객들의 일방적인 선망을 해소하고 보상할 만큼 빼어났다.

회고전에서 상영된 그의 영화들은 팜므 파탈(Femme Fatale)로서의 그의 치명적 매력을 드러내는 ‘불나비’(조해원 감독·1965)를 비롯하여 연기자로서의 성찰이 돋보이는 ‘토지’(김수용 감독·1975)와 ‘육체의 약속’(김기영 감독·1975), 그의 연기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길소뜸’(임권택 감독·1985)과 ‘티켓’(임권택 감독·1986) 등을 아우른다.

김지미는 스캔들의 대상이기도 했고, 거침없는 발언이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폄하되며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는 위축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스타로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았고, 여성으로서 당당했으며, 배우로서 아름다웠다.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올해를 마지막으로 영화제를 떠난다. 그의 열정과 행적은 부산영화제를 키우고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기여했다. 올 부산국제영화제 트레일러(홍보영상)는 헬멧을 쓰고 퀵서비스 오토바이로 ‘배달’되어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김동호 위원장을 이미지화하고 있다. 그만큼 그의 부지런함과 열정적 행보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키운 자양분이자, 한국 영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세계 영화계 인사들이 부산을 찾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

그가 이제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자리를 떠나 ‘자유인’으로 살게 된다. 들리는 말로는 고화질(HD) 카메라를 사서 익힌 다음 영화 현장에 가거나 다큐멘터리를 찍으려 한단다. 아름다운 퇴장과 고희가 지난 나이에도 또 다른 시작을 꿈꾸는 그의 열정이 부럽다.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은 존중 받아야 한다. 그의 성취는 그가 흘린 땀과 때로는 눈물의 결정체일 것이기에 평가되어 마땅하다. 브라보, 유어 라이프! 당신들이 살아온 삶과 앞으로의 시간들에 갈채를!
2010-10-14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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