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시대] 근로시간과 실업률/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글로벌 시대] 근로시간과 실업률/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입력 2012-11-05 00:00
업데이트 2012-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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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프랑스의 한 일간지에 실린 만평이 기억난다. 프랑스 북부의 한 도시에서 거행된 도요타 자동차 프랑스 현지 공장의 개소식에서 당시 프랑스의 총리였던 조스팽과 도요타 사장 간에 근로시간에 대한 동상이몽을 잘 드러냈기 때문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10%에 육박하는 높은 실업률 해소를 위한 혁신적 정책으로 주 35시간제를 실행하기 위해 전력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만평의 내용은 이렇다. 조스팽 총리가 도요타 사장에게 프랑스에서는 35시간제를 도입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자 도요타 사장은 하루가 24시간인데 어떻게 35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노동 시간에 대한 프랑스와 일본의 입장 차이를 해학적으로, 그러나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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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장홍 프랑스 알자스주 정부개발청 자문위원
사실 근로시간은 접근 방식에 따라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할 수 있는 매우 민감한 분야다. 역사적으로 보면 노동 시간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산력의 향상과 더불어 꾸준히 감소해 왔다. 하지만 어디까지 노동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고, 또 고용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자본과 노동의 이동이 자유로운 글로벌 시대에 노동시간 단축이 한 국가에서만 실행될 때, 국제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는 우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시간의 단축은 깊이 재고해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에 따르면 실업의 근본 원인은 생산력의 급격한 증가에 기인한다. 국제 경기가 장기 침체 현상을 보이는 현재와 같은 위기의 시대에 실업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노동시간을 과감히 단축하여 노동을 분배하는 정책을 통한 새로운 고용 창출은 동시에 국민적 연대감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기에 위기의 시대에 더욱 유용하고 의미 있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1997년 조스팽 정부는 주 35시간 정책을 입안하면서 세 가지 효과를 기대했다. 첫째, 적절한 노동의 분배를 통해 최대한의 고용 창출을 이끌어 내고자 했다. 둘째, 긴장된 노사 관계에 새로운 협상의 가능성을 열고자 했다. 셋째, 근로자에게 힘을 실어주어 노사 간에 존재하는 힘의 불균형을 재조정하려고 시도했다. 고실업에 직면한 프랑스 사회 내에 고조되고 있던 사회계층 간의 갈등을 해소해 보려는 매우 의도적이고 야심찬 정책이었다.

하지만 이 정책은 입안 초기부터 기업인들과 우파의 격렬한 반대는 물론 사회당 일부에서조차 회의적인 태도를 취했던, 말 많고 탈 많은 정책이었다. 2007년 사르코지의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비록 이 법이 철폐되지는 않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유야무야되어 버렸다. 그 결과, 현재 프랑스의 주 평균 노동시간은 39.5시간으로 늘어났다. 반면에 400만명이 넘는 실업자들, 특히 25%를 상회하는 청년실업에 시달리고 있다. 물론 근로시간의 연장이 고실업의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유럽의 금융과 경제 위기에도 주요 원인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정계와 사회 전반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이 정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한 평가는 나름대로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아스케나지는 근로시간의 단축으로 30만~35만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었다고 추산한다. 그리고 파리-도핀 대학의 메다 교수는 근로시간 단축이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유효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경제발전과 노동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재고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여러 정책이 경쟁하듯 난무하는 선거의 계절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이 국민의 기본 생존권인 일자리와 연계되지 않는다면 사상누각이 될 것이다. 생산력의 혁혁한 증가로 경제성장이 곧바로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않는 오늘날, 근로시간의 단축을 통한 일자리의 적절한 재분배가 경제민주화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2012-11-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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