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로의 아침] ‘국보 1호’ 유지 혹은 포기의 함정/노주석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국보 1호’ 유지 혹은 포기의 함정/노주석 선임기자

입력 2014-03-13 00:00
업데이트 2014-03-13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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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주석 선임기자
노주석 선임기자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영혼이 없다 못해 참 나쁜 문화재청이다. 국보 1호 숭례문 해제와 교체를 둘러싼 잦은 말 바꾸기 때문이다.

취임 3개월을 앞둔 나선화 문화재청장이 지난주 “숭례문을 국보 1호로 유지할지, 포기할지에 대해 국민의 뜻을 묻겠다”라고 밝혔다. 공론화라는 절차와 연말쯤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해제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행간이 읽힌다. 5년여 전 숭례문 복원에 들어가면서 전통방식으로 복원해 국보 1호로 유지하겠다고 큰소리쳤고, 올 초 파행이 드러나기 전까지도 국보 1호 유지에 이상 조짐이 없던 터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짝퉁 숭례문’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숭례문 파행 복원에 대한 목하 국민적 염증으로 볼 때 국보 1호 유지가 어렵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다 안다. 5년 3개월 동안 277억원을 들여 새로 지은 것이 말짱 도루묵이 되고, 문화재청장이 바뀌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전가의 보도처럼 국보 1호 해제카드를 꺼내 드는 것이 속 터질 뿐이다.

숭례문 국보 1호 유지는 ‘죽은 자식 나이 세기’와 다름없다. 2008년 2월 숯검정으로 변했을 때 숭례문은 장렬하게 숨을 거뒀다. 숭례문 전소는 소신공양(燒身供養)이었다. 국보 1호 무용론, 국보 1호 교체론에 대한 항의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제가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가 입성한 숭례문을 국보 1호, 고니시 유키나가가 들어온 흥인지문은 보물 1호로 각각 지정했다고 주장해 상처를 입혔다. 이뿐만 아니라 정부는 숭례문이 숯덩이로 변하기 한 달 전 국보 1호 해제를 공개리에 진행했다. 그때 문화재청은 국보와 보물의 지정번호를 없애는 방향으로 문화재 등급 및 분류체계를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전에는 또 어땠나. 1996년 교체논의가 처음 제기됐을 때 문화재위원회 심의 끝에 부결됐지만, 불씨는 살아있었다. 2005년에는 감사원까지 나서서 국보 1호와 보물 1호 교체의견을 냈다.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은 “국보 1호를 훈민정음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라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문화재청장이 교체되면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때를 놓쳤다. 흐지부지됐다. 해제 및 교체여론은 여전했지만, 숭례문 화재로 냄비가 펄펄 끓자 꼬리를 내렸다. 쏙 들어가버렸다. 오히려 전통방식으로 복원해 국보 1호를 유지하겠다는 엉뚱한 처방전을 내놨다가 문제를 키웠다.

다시 국보 1호 해제여론에 기름을 부은 신임 문화재청장의 평소 소신이 무엇인지는 밝혀진 바 없다. 차제에 국보와 보물의 일련번호를 없애겠다는 것처럼 들리는 발언이 좀 과한 것 같아 걱정이다. 오버하지 말기 바란다.

국보 1호 교체면 충분하다. 전선을 확대하지 말고 한 가지에 집중하되, 여론에 기대 시간 보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답은 나와 있다. 만신창이가 된 숭례문엔 정말 미안하지만 올 것이 왔다. 국보 1호 해제와 교체에 대한 공론화를 당장 본격화하라. 그것이 상처 입은 숭례문을 위하는 길이다. 누구도 입을 댈 수 없는 ‘진품’ 국보 1호를 보고 싶다.

joo@seoul.co.kr
2014-03-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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