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 박원순 시장의 빚/최용규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박원순 시장의 빚/최용규 사회2부장

입력 2012-11-02 00:00
업데이트 2012-11-02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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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 밥 갖고 전임자가 엉뚱한 짓만 안 했어도 지금의 ‘서울시장 박원순’은 없었을 것이다. 시민사회단체에서는 명망가였지만 정치인이나 행정가로서는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던 그다. 참여연대 사무처장 때나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시절 박원순이란 존재는 시민사회운동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 그가 단박에 서울시장 자리를 꿰찬 것은 단지 관운으로만 보기 어렵다. 운발 좋다고 거머쥘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50% 이상의 지지율로 유력한 서울시장감으로 회자될 때 박원순의 지지율은 고작 5%였다. 안 원장이 박원순의 손을 들어준 2011년 9월 6일 이전만 해도 박원순은 시민들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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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규 사회2부장
최용규 사회2부장
박 시장은 기분 나쁠지 몰라도 시민 입장에서 볼 때 안철수와 비교하면 박원순은 하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시민은 그런 그를 서울시장으로 선택했다. 안 원장에게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안 원장이 민 박원순을 찍었다. 정치 변화, 사회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얼마나 크고 깊었으면 그러했겠는가. 그 표에 절절함이 배어 있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박원순은 빚을 졌다. 안철수가 포기하고 박원순으로 단일화된 그날 박원순은 이렇게 얘기했다. “두 사람은 모두 시장자리를 원한 게 아니다. 진정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상식적으로 이해 안 되는 결론이 나온 것”이라고 했다. 그 둘을 지지했던 시민 또한 그 둘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미래를 꿈꿔온 시민들이다. 방향과 뜻이 맞았기에 앞뒤 가리지 않고 밀어줬다. 허기 채워 준다기에 흠집투성이인 MB(이명박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던 심정과 다르지 않다. 그 간절함을 박 시장이 풀어줄 것으로 기대했다.

박 시장은 시민의 그런 마음이 지금도 유효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즘 야권의 대선 후보인 문재인과 안철수의 단일화가 초미의 관심사다. 두달 전 박 시장은 안 후보와 거의 연락을 안 한다고 했다. 논쟁에 휩싸이기 싫고 서울시장 노릇 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도 했다. “나중에 민주당 후보와 안 후보가 있을 때 큰 틀에서 조정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참모의 말에 “그거야 그분들이 알아서….”라고 손사래를 쳤다. 지금도 두달 전 그때 생각과 같은지 궁금하다. 박 시장이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는 뉴타운 출구전략도 중요하고 신곡 수중보를 허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박 시장에겐 숙명처럼 해야 할 일이 있다. 시민들이 왜 자신을 뽑아줬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시민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누구보다 박 시장이 잘 알고 있을 게다. 일을 하든 일을 하지 않든 전임자들과 같은 그런 유형의 시장을 시민들이 원했겠나.

사람들 눈에 안 후보는 박 시장의 동지요, 후원자다. 안 후보의 동지가 박 시장이라는 게 세간의 눈이다. 박 시장이나 안 후보의 입장에서 이 같은 평가에 대한 해석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밖에서 그렇게 보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좀 더 두고 봐야겠지만 안 후보를 바라보는 시민의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새 정치, 새 정치 하지만 뭐가 새 정치인지 알 수가 없다. 새 정치는 ‘이런 것’이라는 과거·현재와 차별화된 선명한 이념이 없다. 그래서 이런저런 공약은 설계도 없이 짓는 집만 같다. 단지 ‘대통령 하고 싶은 안철수’로 보일 뿐이다. 미래를 갈망했던 이들이 참담함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박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나. 대통령 하고 싶은 안철수로 보이나, 새 정치를 창조할 안 원장으로 보이나. 서울시장이 아닌 시민사회운동가 박원순의 냉정한 눈으로 봐야 한다. 박 시장이 바꾸고자 하는 시민의 삶은 시장실을 은평뉴타운으로 옮긴다고 해서 이뤄지지 않는다. 초심으로 돌아가 당시 시민의 바람이 무엇이었는지 곱씹어 보고 행동으로 옮길 때 박 시장이 꿈꿨던 시민의 삶도 변한다. 빚 갚을 때 되지 않았나.

ykchoi@seoul.co.kr

2012-11-0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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