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장]천안함, 언론과 유언비어/이춘규 논설위원

[서울광장]천안함, 언론과 유언비어/이춘규 논설위원

입력 2010-05-22 00:00
업데이트 2010-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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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세력이 집권시나리오를 가동해 가던 1980년 2월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 육군 사병으로 입대했다.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시절 ‘유신의 국군’을 매일 부르며 훈련소 생활을 했다. 자대 배치를 받을 무렵 유신의 국군 부르기는 사라졌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대학생들의 민주화 시위가 계속됐다. 북한의 안보 위협론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5·18광주민주화운동 때는 외출외박이 전면 금지되고 완전무장한 채 출동대기를 했다. 중무장 상태로 잠자리에 들기도 했다. 계절이 바뀌어 그해 초겨울 삼청작전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시내에 직접 출동하라는 명령이 떨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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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규 논설위원
이춘규 논설위원
정국이 수습되어 갔지만 북한의 위협은 수시로 부각됐다.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훈련에 충실하는 군 본연의 모습에 전념했다. 서부전선 최전방을 책임진 부대의 관측병이라 낮은 등급의 비밀취급 인가도 받았다. 통신병과 함께 이동하는 것이 일상이라 통신보안을 몸에 익혔다. 군복무 단축 방침이 발표됐지만 병력자원 수급 관계로 오히려 길어져 33개월을 복무했다. 정치적 격변기, 안보위기 상황서 한 짧지 않은 군생활은 국가안보, 조국의 의미를 생각해 볼 기회가 됐다.

지난 3월26일 서해 최북단 백령도 해상에서 침몰한 천안함은 북한에서 만든 고성능 음향추적 중(重)어뢰의 공격을 받은 것으로 결론났다. 국민들은 정부가 단호하게 북한을 응징, 사태의 재발을 막아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피격 후 두 달이 지난 현재는 군사적 대응보다는 외교적인 대응이 효과적일 것이다. 국민들은 흥분과 예단을 말고 한반도 안보리스크 등을 차분히 생각해 봐야 한다. 언론 보도가 국민의 궁금증을 모두 풀어주진 못하고 있지만 유언비어에 휘둘려선 안 된다.

천안함 피격 이후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것은 재발을 막기 위해 긴요하다.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은 위기관리체계에 대한 재점검이 필요하다는 교훈을 일깨웠다. 특히 언론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천안함 사태 이후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사석에서 “사회지도층, 그 중에서도 정치인과 언론인들이 투철한 국가관이나 안보관이 있는지 우려된다.”는 지적을 자주 받았다.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으면서도 북한을 보복타격해야 한다는 정치인이나, 1급비밀에 해당하는 군사정보를 여과없이 보도하는 언론에 대한 비판이었다.

군생활 33개월은 국가안보에 대해 끝없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었다. 미국의 9·11이나 이라크·포클랜드 전쟁 등 테러나 전쟁 때 외국 언론의 보도 태도에 대해 학술적인 비교 분석을 해본 경험도 있다. 군인이 피습당한 천안함 사태는 전쟁상황이었다. 한반도가 휴전체제임을 상기시켰다. 이런 때도 언론의 감시기능은 무겁다.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지만 국가안보 사안을 언론이 세세하게 공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 형성을 전제로 국익도 고려해야 한다. 그러자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이번 기회에 국가안보와 언론의 역할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고 넘어가야 한다. 국가위기 때 보도 수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점도 찾아보자.

유언비어(流言蜚語) 문제도 생각해 봐야 한다. 정부는 천안함 정국에 유언비어가 난무하자 엄벌하겠다고 경고했다. 악의적 유언비어는 뿌리뽑아야 한다. 하지만 사회학에서는 유언비어를 단속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본다. 유언은 국민 속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나 사람들의 입을 통해 퍼져나가는 정보로 규정한다. 유언비어는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못하고, 일방적 의사전달이 많은 사회에서 쉽게 생겨난다고 한다. 이 기회에 우리사회에 불신이 가볍지 않다는 점을 겸허하게 되짚어 봐야 한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 했다. 국민신뢰가 없으면 국가는 성립할 수 없다. 불신 해소를 통한 국민 대통합을 위해 모두의 자성과 땀, 인내가 요구되는 시절이다.

taein@seoul.co.kr
2010-05-22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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