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호모 모빌리스’의 시대/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열린세상] ‘호모 모빌리스’의 시대/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입력 2010-06-21 00:00
업데이트 2010-06-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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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는 유럽 여행자라면 한 번은 가봐야 하는 필수 코스에 속한다. 중세 유럽 최대의 도시 중 하나였던 프라하에는 바츨라프 광장을 비롯해 고색창연한 명소가 많으며, 오스트리아와 인접한 체스키크룸로프는 중세 마을의 특징이 가장 잘 살아 있는 소도시이다. 이런 중세풍 도시의 백미는 미로처럼 얽힌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인데, 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다닐 만한 길 양편을 채운 수공예품점과 카페가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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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오영호 한국무역협회 상근부회장
그런데 지도에도 제대로 나와 있지 않은 골목길이 종종 관광객들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얼마 전 우리 회사 여직원 일행이 체코로 배낭여행을 갔다가 겪었던 낭패감도 그런 것이었다. 일행은 가볼 만한 곳으로 알려진 식당이나 숙소를 찾아갈 때마다 적잖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 현지에서 구한 지도를 지참하긴 했지만, 가고자 하는 곳의 골목 이름이 제대로 나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들을 구해준 것은 5월 초 회사에서 나눠준 스마트폰이었다. 지도를 들고 헤매다가 문득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지도검색 서비스를 이용했더니 자신의 위치와 목적지가 정확하게 나와 있더라는 것이다.

이 경우처럼 이제 국내에도 스마트폰이 급속히 보급되면서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모바일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다. KT경제경영연구소는 우리나라의 스마트폰 가입자가 연말까지 491만명에 달하고, 내년에는 그 두 배인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2012년에는 1600만명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에서 놀라운 경험을 거듭하고 있다. 필자가 군대에 있던 시절만 해도 수동 타자기를 사용했고, 1980년대 중반 주미 상무관으로 일하면서 전문을 보낼 때도 여전히 타자기를 쓰다가 워드 프로세서란 물건을 처음으로 접했다. 이후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인터넷이 등장해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하고 메일로 간단히 소식을 전하게 됐는가 하면, 통화기능 위주의 휴대전화를 거쳐 이제는 언제 어디서나 단말기 하나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었다.

스마트폰 중심의 모바일 환경 도래는 비단 이를 이용하는 개인뿐 아니라 경제·산업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단말기와 부품·소재, 무선 네트워크, 콘텐츠 같은 모바일 산업 내 변화는 물론, 무역·고용 등 거시적 측면에서 기회와 위협이 공존하는 새로운 환경으로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 특히 무형의 콘텐츠가 유형의 상품을 소멸시키는 상황에서 콘텐츠의 위력은 서비스 업종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텐데, 중소무역업계의 지위는 취약하기만 하다. 인력이나 자금이 부족한 중소 기업은 대기업과 달리 모바일 시대에 적극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무역협회를 중심으로 수출입 거래알선, 무역상담 등 현장지원 서비스는 물론, 전자상거래 장터와 오프라인 무역교육 사업을 모바일 환경에 맞도록 구축하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21세기 들어 가속화되고 있는 ICT 혁명은 지식의 공유와 축적·확산을 가속화해 지식이 부(富)의 원천이 되는 지식기반 경제를 주도하고 있으며, 모바일 기기가 주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는 데 라디오가 50년, TV가 13년이 필요했다면, 인터넷은 단 4년이 걸렸다. 이미 40억명 이상이 이용하고 있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스마트폰은 어쩌면 인터넷보다 빠른 속도로 보급·활용될지 모른다. 인터넷이 컴퓨터에 기반하다 보니 선과 공간의 한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반면, 모바일 시대는 시·공간을 불문하기 때문이다.

바로 프랑스의 자크 아탈리가 예견한 ‘호모 모빌리스(Homo Mobilis)’ 시대의 현현을 의미한다. ICT 기술의 발달로 인류가 과거 유목민처럼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채 자유롭게 이동하고 놀 수도 있는 시대다. 현대의 유목민은 한 발짝 더 나아가 공간적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 자체의 이동을 시작했다. 우리는 ‘이동하는 인류’인 것이다.
2010-06-2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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