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스’ 美 워런 크리스토퍼 前국무 별세

‘스텔스’ 美 워런 크리스토퍼 前국무 별세

입력 2011-03-19 00:00
업데이트 2011-03-1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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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북핵위기,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때 대북외교

’스텔스 외교관’으로 불리며 중동 평화협상과 보스니아 평화협정 중재 과정에서 활약했던 미국의 워런 크리스토퍼 전(前) 국무장관이 18일(현지시각) 별세했다. 향년 85세.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LA) 지역방송인 KABC는 크리스토퍼 전 장관 가족이 발표한 성명을 인용, 그가 신장암과 방광암에 따른 합병증으로 LA의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19일 보도했다.

외교 무대에서 항상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를 보여온 그는 ‘무대 뒤의 협상자’ 또는 ‘스텔스 국무장관’ 등으로 불리며 중동문제 해결에 큰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는 지난 1977년~1981년 지미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부 부장관을 지냈으며, 1979년 이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이 터지자 52명의 인질 석방 협상에 참여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는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199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탄생시킨 오슬로 평화협정, 1994년 요르단과 이스라엘의 평화조약 체결, 1995년 보스니아 평화협정 중재 등에 참석했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인 자유훈장(Medal of freedom)을 받기도 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클린턴 행정부 시절 제1차 북핵위기, 제네바 북핵 협상, 북한의 강릉 잠수정 침투사건 등 한반도 현안이 굴러갈 때 외교적 영향력을 발휘했다.

대화를 통한 해결을 중시해온 크리스토퍼 장관은 제네바 협상과정을 진두지휘했고, 한국의 김영삼 정부와 클린턴 정부 당시 삐걱거렸던 한.미 공조 외교 현장의 중심에 서 있었다.

1996년 8월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발생 직후 크리스토퍼 장관은 “모든 당사자가 추가적 도발 행동을 말아주기를 촉구한다”며 남.북 쌍방의 군사적 행동 자제를 요청하는 발언을 해 대북 강경노선을 외치던 한국 정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당시 독자적인 대북 군사적 응징까지 검토하던 김영삼 대통령은 “만약 일본이나 미국이 고도로 훈련되고 무장한 외국의 특수부대침투를 받았다면 아마 그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했을 것이고, 특히 미국은 벌써 그 나라를 공격, 이미 그 나라가 없어졌을 수도 있다”며 크리스토퍼 장관의 발언에 불만을 피력했었다.

그 무렵 한미관계는 점점 악화돼 그해 뉴욕타임스는 “국무부 직원들이 한반도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한국 정부라고 생각한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김영삼 정부의 대북 군사행동을 막기 위해 외교력을 총동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장관은 조지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정책에 대해 “’악의 축’은 연설문 작성자의 꿈이었지만 정책결정자엔 ‘악몽’이 됐다”며 비판적으로 평가한 바도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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