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주민 ‘열도 왕따’

후쿠시마 주민 ‘열도 왕따’

입력 2012-03-06 00:00
업데이트 2012-03-06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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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능 옮긴다”… 택시승차도 거절 · 지자체, 피해지역 쓰레기 수용 거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오는 11일로 1년이 되지만 후쿠시마 주민들은 불신의 벽에 또 한 번 좌절하고 있다. 방사능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긴 후쿠시마 이재민들은 방사능에 전염된다는 풍문에 현지 주민들로부터 냉대를 받고 있고, 재해 지역 쓰레기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 접수를 거부해 언제쯤 처리할 수 있을지 모를 처지다.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직후 위급한 상황에서도 ‘매뉴얼’에만 집착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대한 불신은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야마나시현 고후 지방법무국은 지난 3일 야마나시현으로 피난해 온 후쿠시마 주민이 부당한 차별을 받았다며 구제를 요청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피난민은 아이를 거주지 근처 보육원에 보내려 했으나 방사능 오염을 염려한 다른 학부모들의 반대로 거절당했다. 이에 야마나시현 법무국은 후쿠시마 피난민에 대해 근거 없는 편견을 갖거나 이들을 차별하지 않도록 촉구하고, 관련 포스터와 전단지를 제작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몽 활동은 거의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 법무성이 지난 2일 발표한 전국의 집단 따돌림 건수는 3306건으로 전년보다 21.8% 증가했다. 이 가운데 491건이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다른 곳으로 전학한 학생들의 신고 사례다.

특히 산케이신문이 최근 후쿠시마현 지자체장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77.8%가 풍문으로 인한 피해를 입었다고 응답했다.

실제로 원전 사고 이후 다른 지역에 피난 중인 후쿠시마 주민들로부터 택시 승차, 호텔 숙박, 병원 진찰을 거부당했다는 신고가 잇따랐다. 현 내에 가득 쌓인 쓰레기 처리 문제도 피해 지역 주민들에겐 시급하다. 이와테현과 미야기현, 후쿠시마현에서 대지진과 쓰나미로 건물이 부서지면서 발생한 잔해와 생활 쓰레기, 침수된 산업 쓰레기는 모두 2252만 8000t에 이른다. 이 가운데 지금까지 소각과 매립, 재이용 등으로 처리가 끝난 쓰레기는 약 5%(117만 6000t)에 불과하다. 하지만 피해 지역 쓰레기를 전국에 분산 처리하려는 정부 방침은 지자체의 반발로 난관에 부딪혔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대지진 피해 지역의 쓰레기를 수용할지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지자체의 86%가 수용을 거부했다.

피해 주민들의 불신이 높아지고 있는데도 매뉴얼만 고수하는 정부와 지자체의 ‘탁상 행정’은 여전하다. 5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후쿠시마현과 주변의 지자체 가운데 83%는 원자력 사고 재해 시 갑상선암을 방지하기 위한 안정 요오드제를 비축하고 있지만 정부로부터 배포 지침과 복용 지시가 없다는 이유로 주민들에게 나눠 주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마키노 에이지 호세이대학 교수는 “방사능이 전염된다는 풍문 때문에 후쿠시마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편견과 차별을 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면서 “방사능은 인체에 전염되지 않는데도 이기적인 사회 풍토로 인해 일본 사회가 근대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고 지적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2012-03-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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