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예보 발언 배경 관심’강경’ 메르켈 해석 여지 두나
신중하기로 이름난 메르켈이 실수를 한 것일까, 아니면 일부러 힌트를 준 것일까?발칸 국가들을 순방중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9일(현지시간) 사라예보에서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과 관련해 미묘한 해석이 가능한 발언을 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기자들에게 “내가 (전에) 이미 말했지만, 나로서는 고전적 헤어컷(부채탕감)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면서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고 독일 언론이 보도했다. 그리스 부채 처리에 대한 견해를 밝히면서다.
강경한 원칙을 앞세워온 그의 이번 언급에서 방점은 아무래도 ‘고전적’에 쏠렸다. 메르켈 자신은 전에 이미 말한 것이라고 전제했지만, 그동안 그의 발언을 다룬 언론보도에서 고전적이라는 단어는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관심의 배경은 고전적 헤어컷은 안 되지만 다른 채무 경감 방안은 검토할 여지가 있다는 해석이 허락되는 화법에서 비롯된다.
당장 비타협적 자세로 일관한 메르켈 총리가 다소 유화적으로 바뀐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왔지만, 많은 언론은 그가 헤어컷 거부 입장을 지속하는 데 주목하는 양상을 보였다.
으레 협상을 앞두고는 상대에게서 가장 많은 것을 양보받겠다는 최대주의적 요구의 결기를 보이는 게 당연하므로 메르켈의 이번 발언으로 그가 유화론으로 유턴했다고 보는 것은 순진한 접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메르켈 총리는 이날 국제통화기금(IMF)이 그리스에 필요하다고 지적한 채무 경감과 차이를 묻는 말에도 과거 사례를 거론하며 실수인지, 암시인지 헷갈리는 발언 맥을 이어갔다.
그는 “지난 2012년 우리는 이미 그리스가 빚을 감당할 수 있게끔 만기를 연장하고, 유럽재정안정기금(EFSF) 대출 상환 기한을 2020년으로 늦추어 줬다”고 설명하며 그리스가 빚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주는 문제를 처음 다루는 게 아니라는 점을 짚었다.
지금까지 독일 정부의 공식 견해는 채무 경감 불가론이었던 만큼 이런 설명은 묘한 상상력을 유발했다.
당장 로이터 통신은 그가 만기 연장, 이자율 저감, 원리금 상환 지불유예 기간 연장 같은 형태의 부채 경감 방안은 배제하지 않은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현재 그리스 정부가 부채 30% 삭감 등을 요구한다는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IMF와 미국은 ‘채무 조정’(debt restructuring)이라는 표현으로 채권단의 양보를 촉구하고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채무 리프로파일링’(debt reprofiling)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독일 정부의 입장은 완강한편이다.
여기서 채무 조정은 원금 삭감을 포함해 이자율 인하, 만기 연장, 이자 감면 등 채무자의 부담을 낮추는 방안인 반면 리프로파일링은 원금 감면을 제외한 이자율과 만기 조정을 뜻한다.
이날 대표적 강경론자인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도 IMF가 최근 보고서에서 주장한 그리스 부채의 지속가능성은 “헤어컷 없이는 타당하지 않고, IMF 말이 맞다”고 처음으로 긍정했다.
그러나 쇼이블레 장관은 그럴만한 여지가 별로 없다고 강조하고, 유럽조약 위반이라는 근거를 들어 ‘부채 탕감’은 없다고 메르켈 총리와 같은 견해를 밝혔다.
또한, 그 역시 “2012년 당시 IMF 제안보다 더 많이 민간부문에서 채무 조정을 시행했다면서 채무 프로파일링이나 채무 조정의 여지가 매우 적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독일 경제연구소 DIW의 마르셀 프라처 소장은 그리스는 앞으로 2년간 300억∼400억 유로 규모의 3차 구제금융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이와 별도로 100억 유로 이상이 은행권 지불능력 회복에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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