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연인 기다리듯 음식 기다려야”

“떠난 연인 기다리듯 음식 기다려야”

입력 2010-05-25 00:00
업데이트 2010-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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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객’ 전 27권 마침표 찍은 허영만 화백

“스테이크는 세 가지로 주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식당은 이미 양념을 해놓아 손님이 요리의 간을 선택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적어도 맵거나 싱겁거나 달거나 담백한 정도는 고를 수 있게 해줘야 한식의 세계화와 같이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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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식객’을 완간한 허영만 화백이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9년간 그린 총 27권 세트를 양손으로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만화 ‘식객’을 완간한 허영만 화백이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 9년간 그린 총 27권 세트를 양손으로 들어보이며 웃고 있다.
연합뉴스
2002년 9월부터 연재에만 9년, 기획에서부터 27권의 마지막 점을 찍기까지는 무려 11년이 걸렸다. 오랫동안 철저한 취재를 거쳐 A4지 1만장이 넘는 자료를 모았고, 그동안 찍은 음식 사진은 라면박스 세 상자를 가득 채웠다. 한글을 막 깨우친 5~6세 꼬마들부터 70대 할아버지·할머니들까지 폭넓은 인기를 끌었다. 영화로 두 차례, 드라마로 한 차례 만들어질 정도였다. 국내에서는 300만부 이상, 일본 시장에서 10만부 이상 팔리기도 했다. 한국 만화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자 최초의 ‘전문 만화’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제철 음식 먹자는 이야기 하고 싶었죠”

허영만(63) 화백은 24일 서울 광화문의 한 음식점에서 가진 ‘식객 ’ 완간 기념 간담회에서 “요즘은 돈만 내면 계절을 떠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에 음식 귀한 줄을 모르고, 올해 여름 수박을 먹으면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듯 애틋하게 내년 여름의 수박을 기다려야 하는 데 음식을 기다리는 마음이 없는 것 같아 식객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따지고 보면 제철 음식을 먹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한 어린 학생이 식객을 본 뒤 어머니에게 ‘지금 이 음식 먹을 때가 아니다.’, ‘왜 음식에 조미료를 넣느냐.’고 말했다는 것을 들으면 보람을 느낀다.” 며 웃었다.

허 화백은 “차기작을 3년 정도 연재한 뒤 다시 음식 만화로 돌아갈 생각이다. 생선구이 음식이나 시장통을 소재로 생각하고 있다. 제목이 ‘식객’이 될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고구마·육개장·미역국 에피소드 가장 인기

식객에 등장한 135가지 음식 에피소드 가운데 팬들에게 가장 인기 있었던 에피소드는 고구마, 육개장, 미역국이었다고 소개하는 허 화백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로는 고추장 굴비 장아찌를 꼽았다. “예전에는 담이 낮아 부엌에서 요리하면 바람부는 방향 그대로 냄새가 퍼지니까 몰래 먹을 수도 없었다. 정이 많았던 시절이라 낮은 담을 통해 음식을 옆집에 전달하기도 했다. 요즘은 집집마다 폐쇄된 공간이라 그런 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전라남도 여수 출신인 그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전어회와 정어리쌈이라며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요즘엔 식초가 달라 그 옛날 어머니의 맛이 나지않는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식객의 마지막을 냉면으로 장식한 것과 관련해서는 “열이면 열 사람, 사람마다 호불호가 명확하고 지방마다 요리 형태가 다양하다.”면서 “냉면이 이것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런 냉면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한식 세계화 바람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많은 것을 알리기 보다 음식의 기본이자,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다는 우리의 소금을 먼저 알리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후속작은 칭기스칸 다룬 ‘메르키트의 오줌’

후속작은 칭기스칸을 소재로 한 ‘메르키트의 오줌’이다. 주인공은 칭기스칸이 아니라 그의 아내가 적에게 붙잡혀 갔다가 임신한 뒤 돌아와 낳은 칭기스칸의 첫째 아들이다. 허 화백은 “승자의 입장이 아니라 메르키트의 오줌이라는 별명으로 평생을 산 맏아들의 시각으로 그릴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작품을 발표할 통로인 만화 잡지도 거의 없어졌고, 그나마 남은 잡지 가운데 일부는 만화인지 낙서판인지 모를 정도로 국내 출판 만화 시장이 열악해졌다고 안타까워 하는 허 화백은 후배 작가들에게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야구경기 때 미리 몸을 풀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대타로 호출되면 십중팔구 안타를 치지 못한다. 언제 자신의 이름이 불릴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 순간이 올 때 바로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준비해야 한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2010-05-25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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