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개토왕 생전 정식 명칭은 영락태왕”

“광개토왕 생전 정식 명칭은 영락태왕”

입력 2012-02-14 00:00
업데이트 2012-02-14 15:19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中.日.대만 학자들, 광개토대왕 국제학술회의서 연구논문 발표

“광개토대왕의 생전 정식 명칭은 ‘영락태왕’이었다.”

광개토대왕비 원석 탁본 제1면의 동쪽 부분 상단. 비석의 원모습을 보여주는 일급자료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광개토대왕비 원석 탁본 제1면의 동쪽 부분 상단. 비석의 원모습을 보여주는 일급자료로 평가된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광개토대왕 재위 당시 중국과 동북아시아에는 수많은 나라가 공존하고 있었고 서로 빈번하게 왕래하면서 문화적으로 아주 풍성하고 발전된 모습을 보였다.”

”광개토대왕은 북방과 남방을 연계한 대외 전략을 통해 고구려 전성기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었다.”

광개토대왕 서거 1천600주년을 맞아 오는 16-17일 서울역사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국제학술회의에서 외국 학자들이 발표할 연구 논문의 주요 내용이다.

중국, 대만, 일본 세 나라의 주요 학자들은 ‘고구려 광개토왕과 동아시아’를 주제로 한 이번 국제학술회의에서 광개토대왕과 고구려사를 다각도로 조명할 예정이다.

외국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중국 베이징대 중국고대사 연구중심(센터) 뤄신(羅新) 교수 = 그는 ‘고구려 왕호제도(王號制度)에 관한 몇 가지 견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김부식의 ‘삼국사기’ 등 문헌자료와 광개토대왕비를 토대로 고구려의 왕호제도를 분석했다.

뤄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 왕족과 지배층이 사용한 언어는 고대 만주-퉁구스어에 비교적 가까우며, 알타이(Altaic) 언어 범주에 속해 있거나 그와 인접해 있다.

뤄 교수는 “알타이 계통의 전통적인 정치명호(政治名號)는 이름(王名)과 칭호(官稱.title) 두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면서 고구려는 최고지도자를 알타이어 계통에서 수령을 뜻하는 ‘가(aka/akan)’로 칭했고, 후한(後漢) 중후기부터 중국식 명칭인 ‘왕’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또 광개토대왕의 연호로 알려진 영락(永樂)은 광개토대왕 생전의 왕명이었으며 태왕(太王)은 칭호였다고 주장했다. “광개토왕이 즉위할 때 ‘영락태왕’이라는 칭호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영락태왕’은 생전의 정식 칭호였다”는 것이다.

뤄 교수는 또 광개토대왕처럼 고구려 왕들은 생전에 각기 왕명이 있었고, 고구려 고유 언어로 불렸는데 이를 한문으로 기록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명칭이 생겨난 것으로 추정했다. 사후 시호(諡號) 역시 모두 고구려 언어로 불렸으며 이후 한문으로 기록됐다고 분석했다.

◇리밍런(李明仁) 대만 국립 자이(嘉義)대 교수 = 리 교수는 문화교류라는 측면에서 광개토대왕 재위 전후의 동북아시아 역사를 조명했다.

그는 중국 중심의 ‘중화사상’의 개념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문화인류학의 문화접변(culture acculturation) 개념을 도입했다.

리 교수는 광개토대왕 재위 전후 당시의 국제 정세를 ‘세력균형’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면서 중국의 중원과 동북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병렬적으로 공존하고 서로 빈번하게 왕래하면서 문화적으로 풍성한 발전을 이뤘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리 교수는 특히 중국 문화(漢文化)의 영향 등 자문화 중심주의적 시각에서 고고학 발굴 자료나 문헌 자료를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고학의 발굴 결과는 파편적이고 우연적인 요소가 많아, 전반적으로 그 시대의 문화교류상을 그려낼 수 없다”면서 “고고학 자료에만 의지하고 문화교류를 해석할 때 지극히 제한된 일부를 전체로 잘못 보고 자기 입장에서 자기 소리만 말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고 민족주의적, 자문화 중심적인 역사 해석을 경계했다.

또 “고대 광개토왕 시대의 고구려 문화를 연구할 때 과거의 어떤 전통적인 생각의 굴레를 벗고 그 시대의 역사적 사상을 깊이 고려해야 하고 현대인의 관념을 덧칠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리 교수는 또 중원에 존재한 고구려 성씨인 여(餘)·고(高)·왕(王)씨, 후연(後燕), 북연(北燕) 등의 왕조에서 활약한 부여 왕자 여울(餘蔚), 고구려계 모용운(慕容雲.高雲) 등도 새롭게 조명했다.

◇이노우에 아오키(井上直樹) 일본 교토부립대 교수 = 이노우에 교수는 ‘광개토왕의 대외관계와 영락 5년 대거란전(對契丹戰)’이라는 제목의 발제문에서 거란전을 중심으로 광개토왕의 대외 전략을 살펴봤다.

그는 광개토왕이 거란의 한 갈래인 패려(稗麗)와 전쟁을 벌인 것은 남방 세력인 백제 등과의 전투에 앞서 배후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광개토왕이 남방의 백제와 군사적으로 심각한 긴장상태였는데도 불구하고 대(對) 남방전보다 먼저 패려 토벌을 결행했던 이유는 광개토왕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이라면서 “대 패려전은 광개토왕이 행한 대외전략 전체 틀 안에서 자리매김시켜 종합적으로 고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광개토대왕의 남방 정책은 서북 변경의 동향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으며 백제와의 군사적 대립이 고조돼 남방에 대한 전략을 결행하는 데 서북 변경의 정세를 경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이노우에 교수는 고구려가 서북쪽과 남쪽 두 곳에서 전투를 벌이는 것을 피했으며 두 곳의 상황을 연계해 대외 전략을 적절하게 구사해 동북아시아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고구려는 자국의 서북쪽과 남쪽, 두 가지 방면에서 전투하는 것을 피하고자 했는데 신라, 백제와 대립이 격화됨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對) 북위 외교를 전개했다”면서 “고구려는 이러한 외교전략을 통해 광개토왕이 고구려 전성기의 기초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연합뉴스























[사건 Inside] (1) 믿었던 ‘모델급’ 여친이 회사 사장과수상한 삼각관계가 만든 살인미수

[사건 Inside] (2) 소개팅와의 하룻밤이 끔찍한 지옥으로…인천 ‘미성년자 꽃뱀 사건’

[사건 Inside] (3) 생면부지 여중생에게 몹쓸 짓을…‘전주 여중생 성추행 동영상 사건’

[사건 Inside] (4) 밀폐공간에 속 시신 3구, 누가? 왜?…‘울산 아파트 살인사건’ 전말

[사건 Inside] (5) “입양한 딸, 남편이 바람핀 뒤 나 몰래?”…‘구로 영아 폭행치사 사건’

[사건 Inside] (6) 조강지처 베란다서 밀어 살해해 놓고 태연히 음료수 마신 ‘엽기 남편’

[사건 Inside] (7) 범인 “시신은 상상할 수 없는 곳에 있다”…‘거창 40 여성 실종사건’

[사건 Inside] (8) “ 애인이 ‘꽃뱀 예림이’라니”… 70 재력가의 비극적 순정

[사건 Inside] (9) 군대에서 발견된 성병, 범인은 ‘그 아저씨’…‘전주 무속인 추행 사건’

[사건 Inside] (10) 이웃사촌들이 최악의 ‘집단 성폭행’전남 장흥 시골마을의 비밀

[사건 Inside] (11) 명문 여대생, 남친 잘못 만나 마약에 성매매까지

[사건 Inside] (12) 부인 시신에 모자씌워 저수지로사기 결혼이 부른 엽기 살인



[사건 Inside] (13) “나만 믿으면 100만원이 3억원으로…‘인터넷 교주’ 믿었다 패가망신

[사건 Inside] (14) 독극물 마신 살인범 주유소로 난입해…‘강릉 30 살인사건’

[사건 Inside] (15) 글러브 끼고 주먹질에 ‘쵸크’로 반격엽기 커플의 사랑싸움



[사건 Inside] (16) “감히 나를 모함해?”…가양동 ‘일진 할머니’ 기막힌 복수

[사건 Inside] (17) “실종된 여고생 3명, 장기가 적출된 채…”…순천 괴소문의 진실

[사건 Inside] (18) 남자 720명 울린 부천 꽃뱀 알바의 정체수상한 레스토랑의 비밀

[사건 Inside] (19) 40대女, 동거남이 준 술 마셨다가 깨어나보니…나쁜 남자의 진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