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정부 日식민지배 배상 포기했다”

“이승만정부 日식민지배 배상 포기했다”

입력 2012-09-11 00:00
업데이트 2012-09-1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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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교수 분석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기인 이승만 정권 초기부터 우리 정부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포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동준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는 13일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에서 열리는 한일관계 국제심포지엄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논문 ‘해방의 이론과 실제 : 병합조약에 대한 초기 대한민국 정부의 인식과 행동’을 발표한다.

이 교수는 10일 연합뉴스와 전화통화에서 “과거 청산을 이야기할 때 박정희 정권은 친일적이었고 이승만 정권은 일본에 대해 아주 강경하게 대응했다는 인식이 일반적인데 이승만 정권 초기부터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승만 정부가 민족적인 자긍심에서 한일병합조약 자체를 무효라고 주장했지만 식민지 지배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주장한 제국주의 논리를 그대로 수용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연구 논문에서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를 집중 분석했다.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대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은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

1965년 6월22일 체결된 ‘대한민국과 일본국 간의 기본관계에 관한 조약’(기본관계조약) 제2조의 이른바 ‘구조약 무효’ 조항이다.

이 교수에 따르면 이 조항의 끝에 언급된 ‘이미 무효’의 효력발생 시점에 대해 한국정부는 ‘처음부터’ 무효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 교수는 “일본의 한국병합으로 귀결된 일련의 조약이 ‘처음부터’ 무효였다면 일본의 식민지배는 법적 근거가 없는 위법행위이므로 한국정부는 당연히 이에 대한 책임과 피해보상을 일본에 요구할 터였다”면서 그러나 1951년 이후의 대일 교섭에서 한국 정부는 단 한 차례도 피해보상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박정희 정권이 ‘굴욕외교’를 전개한 결과 한일합병조약의 무효가 애매해진 것이 아니라 이승만 정권의 초기 교섭 때부터 한국 정부는 이미 이 문제에 대해 정치적 절충을 모색했다는 게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1950년 10월 주일대표부 대일강화조사위원회가 작성한 ‘대일강화 조약에 대한 기본태도와 그 법적 근거’(이하 ‘기본태도’)를 근거로 제시했다.

’기본태도’가 구조약의 원천적 무효를 주장하면서도 조선 총독의 식민지 통치에 대해 ‘선택적으로 추인 또는 묵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인정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기본태도’는 ‘시효’와 ‘무권대리’라는 두 가지 법률 개념을 통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 일본의 침략전쟁 과정에서 당한 피해에 대해서는 ‘무효’라고 명시한 반면 ‘한국 국민의 복리를 위한 공채의 발행’ ‘반사회적 범죄자에 대한 판결’ 등에 대해서는 ‘유효’한 것으로 추인했다.

이 교수는 ‘기본태도’가 조선 총독의 통치 행위를 대체로 ‘유효’한 것으로 추인했다면서 이는 자칫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실질적 추인’ 또는 병합조약의 ‘유효론’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또 1949년 한국 정부가 최초로 작성한 ‘배상조서’에서도 식민지지배 자체에 대한 배상이 빠져 있었다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특히 해방 후 일본과의 ‘첫 만남’이었던 1952년 2월 20일 ‘제1차 한일 재산 및 청구권 문제 분과위원회’에서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식민지 지배에 대한 피해보상을 포기할 뜻을 분명히 밝혔다”면서 식민지지배에 대한 피해보상을 포기한 것은 “정부 수립 초기부터 구축된 법적, 정치적 판단이자 정책”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한일관계를 되묻는다’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일본의 한반도 지배와 한국 독립의 성격을 둘러싼 문제, 피해보상 문제, ‘내재적 발전론’을 주창한 일본 학자 가지무라 히데키의 역사관 등을 살펴본다.

오타 오사무 일본 도시샤대 교수는 초기 한일교섭과 이탈리아-에티오피아 강화조약을 비교 분석한 ‘식민주의의 공범-두 개의 강화조약에서 초기 한일교섭으로’를 발표할 예정이다.

’제국청산 과정으로서의 일한 교섭’(아사노 도요미)’ ‘일본 패전 후 한일 분리와 한반도 주권’(나가사와 유코) ‘한일 과거 청산의 기본구조’(김창록) ‘전후 한국의 대일 배상 요구의 변용’(장박진) ‘일한 체제 하의 민중과 의미로서의 역사’(강원봉) 등의 연구논문이 발표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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