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 그 빛깔의 태생은 같은데 하나는 태평양 건너온 듯 하나는 시간을 되돌린 듯

먹, 그 빛깔의 태생은 같은데 하나는 태평양 건너온 듯 하나는 시간을 되돌린 듯

입력 2012-11-10 00:00
업데이트 2012-11-10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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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 극 수묵화展… 장재록 ‘가속의 상징’· 김범석 ‘산전수전’

최첨단 철학에서 가져오는 개념작업, 거의 독립영화 수준으로 작업하는 영상작업, 건설공사장 수준의 거대 설치작업, 이런 것들 사이에서 묻혀 버린 장르가 있다. 수묵이다. 그런 수묵의 앞날을 뚫어 보려는 두 개의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재밌게도 뚫어 보려는 건 같은데, 그 방식은 정반대다. 흥미롭다.

일단 전시제목부터 그렇다. 장재록(34) 작가의 전시명은 ‘가속의 상징’(Memento of Momentum)이다. 김범석(49) 작가의 전시명은 ‘산전수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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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록 작가의 벤츠화. 미국 어느 공원에서 열린 자동차 동호회 모임에서 발견한 구형 모델을 그렸다. 여행 다니면서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다가 몇 달 뒤에야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린다. 수묵인데도 화려하고 윤기가 넘친다.
장재록 작가의 벤츠화. 미국 어느 공원에서 열린 자동차 동호회 모임에서 발견한 구형 모델을 그렸다. 여행 다니면서 수천장의 사진을 찍었다가 몇 달 뒤에야 그 가운데 하나를 골라 그린다. 수묵인데도 화려하고 윤기가 넘친다.
●張, 정교하고 실험적인 붓놀림… 벤츠·철골 구조물 등 현대 기계문명 그려

그리는 대상도 완전히 다르다. 장재록은 최첨단 기계를 다룬다. 벤츠, 아우디 같은 외제 고급 승용차를 그렸다. 최근에는 뉴욕 맨해튼에 있는 다리의 골조 구조를 아래에서 올려다본 장면을 그렸다. 김범석은 8년째 파묻혀 작업하고 있는 경기도 여주 주변 풍경을 담았다. 웅장하고 멋진 풍경은 아니다. 꼭 여주가 아니어도 될 법한, 산 있고 물 있는 그런 풍경이다.

그리는 방식도 대조적이다. 장재록은 정교하게 접근한다. 종이를 덧붙인 면천 위에다 작업하는데 먹물의 농담을 조절해 그린다. 밑그림 단계에서부터 최소 5단계 이상, 보통 6~7단계 정도 먹물의 맑고 어두운 정도를 그려둔다. 그에 맞춰 가장 진한 색을 칠하고, 물을 타서 연하게 한 뒤 다음 단계의 색을 칠하고, 이 과정을 반복해서 완성한다. 반대로 김범석은 아주 자유로운, 어떻게 보자면 제 멋대로 그리는 쪽에 가깝다. 종이를 세운 뒤 그 위에다 바로 붓질을 하는데 작품마다 먹물이 줄줄 흘러내린 자국이 역력하다. 붓질 역시 정교하게 계산을 해서 움직였다기보다 그냥 척척 가져다 찍었다고 하는 쪽에 가깝다. 두껍게 겹치다 보니 먹을 머금을 대로 머금은 종이는 딱딱하게 두껍다.

그래서 전시장 풍경도 다르다. 장재록의 전시장은 깔끔하고 세련됐다. 압도적이고 눈길을 끄는 작품이 몇점 나열되어 있고, 최근에 새롭게 시도한 설치작품도 있다. 전시장 전면에는 지금 작업 중인 재규어 작업도 있다. 정교한 작업을 자랑하려는 듯, 밑그림과 먹물도 갖춰놨다. 전시 기간 동안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라니, 운 좋으면 작가의 작업 광경을 확인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김범석의 전시장은 화이트큐브가 무색할 지경이다. 붓놀림을 익히기 위한 엄청난 예비작업량을 자랑하려는 듯, 1층 전시실엔 작가의 작업들이 빨래처럼 촘촘히 널려 있다. 2층에도 200호짜리 대형작업들이 즐비하게 깔려 있을 뿐 아니라 작가의 자유분방한 작업태도를 보여주려는 듯, 작업실에서 종이를 대놓는 큰 나무판자까지 떼어다 작품과 함께 걸어뒀다. 간이작업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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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석 작가의 산수화. 하늘, 구름, 길, 물 같은 소재로 여백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붓질로 커다란 화면을 말 그대로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어쩌면 전통 산수화를 냉대하는 세상에 대해 작가가 느끼는 질식할 것 같은 감각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김범석 작가의 산수화. 하늘, 구름, 길, 물 같은 소재로 여백을 주는 일 따윈 없다. 붓질로 커다란 화면을 말 그대로 빽빽하게 채워 넣었다. 어쩌면 전통 산수화를 냉대하는 세상에 대해 작가가 느끼는 질식할 것 같은 감각의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金, 거칠면서도 자유분방한 붓놀림… 자연 그대로의 멋·전통 산수풍경화 고집

반응도 다르다. 장재록은 초창기에는 자신의 작품이 논란의 대상이었다고 했다. 첫 전시를 열었을 때 선생님은 물론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다는 걸 나중에서야 들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먹물로 어떻게 저런 걸 그리느냐는 말이 나왔던 모양이다. 김범석은 거꾸로 미련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수묵의 시대가 끝나가는 마당에 웬 전통 수묵 풍경화냐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런데도 고집스레 전통만 고집했다. 어떤 작품들에는 조개껍질 가루인 호분, 아교처럼 아주 기본적인 재료만 사용한 것도 있다. 아예 작품에서 흙냄새를 풍겨 보겠다는 각오에서다.

어느 쪽이 좋으냐는 취향의 문제겠지만, 오랜만에 접하는 대형 수묵전시라 반갑다. 장재록의 전시는 29일까지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 (02)725-1020. 김범석의 전시는 12월 16일까지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1관. (02)737-7650.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12-11-1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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