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불길이 막은 전하지 못한 편지들

전쟁의 불길이 막은 전하지 못한 편지들

입력 2012-04-14 00:00
업데이트 2012-04-14 00:00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흥환 엮음 삼인 펴냄

1950년 10월 8일. 6·25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38선을 넘어 평양을 향해 북진을 거듭하던 때다. 당시 평남 평원군 숙천면 백노리의 사법간부 양성소에 입소한 아내 모씨는 평남 양덕군에 있는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11일과 12일 포함, 모두 세 통의 편지를 썼는데, 하루하루 급변하는 전황이 오롯이 전해진다.

●6·25전쟁 미수신편지… 美 소유

첫 편지는 양성소에 도착하던 날 썼다. 몇 번의 폭격을 무사히 지나온 그는 “목적지까지 목숨은 살아서 도착”했다며 담담하게 소식을 전한다. 편지 끝자락에 “어떡하든지 숨만이라도 붙어서 다시 한 번 그립게 만날 날을 기립시다.”라며 절박한 심정의 일단을 드러내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고 있다.

11일 두 번째 편지부터는 엄습하는 전쟁의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절대로 당신에게 긴급한 소식을 전합니다.”로 시작된 편지는 주변 사람에게 들었다는 ‘인민군 신의주 후퇴설’을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전하며 자기 혼자만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을 내비친다. 이전의 의연한 자세는 사라지고 “살아 있는 동안만 소식을 전하겠다.”며 자신감을 잃어 가고 있다.

마지막 편지를 쓴 12일엔 양성소가 폐쇄됐다. 연수생들도 모두 징집됐다. 아내 또한 “정세를 보면 다 같이 있다가 죽었으면 좋겠습니다.”라며 자포자기하고 만다. 편지를 보낸 이후 부부는 어찌 됐을까. ‘목숨만은 붙어’ 재회를 했을까, 아니면 끝내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됐을까.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 오롯이 담아

‘조선인민군 우편함 4640호’(이흥환 엮음, 삼인 펴냄)는 6·25전쟁 당시 미군이 노획한 북한 문서 중 미수신된 편지와 엽서를 골라 실물 사진과 함께 소개한 책이다.

미군의 평양 점령 당시 밀봉된 채 노획돼 60여년간 잠들어 있던 것을 미국 워싱턴 인터내셔널센터의 키손(Korea Information Service on Net) 프로젝트에 선임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저자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 서고에서 발견해 세상에 알렸다.

책은 편지 1068통 가운데 113통을 추려 전하고 있다. 주로 1950년에 쓴 것들로, 그해 9월, 10월 평양중앙우체국 소인이 많이 찍혔다. 북한 내에서 오간 것이 다수이지만 남과 북, 혹은 중국이나 소련과 오간 것도 있다.

저자는 이 편지들을 “한국 현대사의 한 시기를 보여주는 1차 사료이자 전쟁문학”이라고 평가한다. 역사서가 흉내 낼 수 없는 민중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긴 한 시대의 증언이라는 것.

●수·발신자 나타나면 반환 요청

편지의 소유자는 미국 정부다. 저자는 “수·발신자를 찾으면 소유가 반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봉투에 나온 몇몇 주소지를 찾아봤지만 허사였다.”며 “책을 보고 편지의 주인이 나타난다면, 그래서 미 국립문서보관소에 이 편지 묶음의 반환을 요청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했다.

신분이 드러날 우려가 있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실명으로 소개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1만 5000원.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12-04-14 20면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