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에세이] 빅토리아 폭포와 인플레이션

[포토에세이] 빅토리아 폭포와 인플레이션

입력 2010-11-14 00:00
업데이트 2010-11-14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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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화 1달러와 맞바꾼 짐바브웨 천억 달러

세계 3대폭포’라고 하면 남아메리카의 이과수 폭포, 북아메리카의 나이아가라 폭포, 남아프리카의 빅토리아 폭포를 꼽는다. 이 세 폭포는 공교롭게도 두 나라 또는 세 나라의 접경지에 있다. 이과수는 브라질·알젠친·파라과이 세 나라, 나이아가라는 미국과 캐나다, 빅토리아는 짐바브웨와 잠비아 두 나라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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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한 잠베지강, 큰 강물이 유유히 흐르다가 갑자기 지층이 100m쯤 푹 꺼져 생긴 단층 아래로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의 강물이 그대로 한꺼번에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엄청난 규모의 강물이 일시에 떨어지는 소리, 하늘로 높이 치솟는 물보라와 물안개, 그로 인해 주변에 선명하게 전개되는 무지개 등등 숨 막힐 듯 압도하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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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가 길고 장대하게 두 나라에 걸쳐 있기 때문에 폭포의 전체 모습을 다 보자면 한쪽에서는 미흡하다. 다른 쪽으로 가서 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다. 인접했다고 해도 국경은 국경이니까 국경을 넘어야 한다. 국경을 넘으려면 비자와 출·입국 수속이 필요하다.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 위해 짐바브웨에 갔을 때 일이다. 짐바브웨 쪽에서 보고, 잠비아 쪽으로 가자면 우리나라 옛날 시골 기차역 같은, 작고 허름한 출국장을 통해야 한다. 출국장에 들어서려는데 남루한 차림의 짐바브웨 흑인 소년이 다가와 자기 나라 화폐를 보이며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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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전하지 않겠냐고 하는 줄 알고 처음엔 외면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자기 나라 화폐를 기념품으로 사라는 것이었다. 화폐 액수가 자그마치 50억 달러, 100억 달러, 1000억 달러짜리다.

슬며시 흥미가 생겨 얼마냐고 물으니 미국 달러로 5달러만 내라고 한다. 잠시 갸우뚱했더니 금방 3달러로 내려갔고, 결국 1달러로 낙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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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어서 피식 웃으며 3달러를 주고 짐바브웨 돈 50억 달러, 100억 달러, 1000억 달러짜리 지폐 석 장을 샀다. 같이 갔던 일행에게 자랑을 하니 1조(one trillion) 달러짜리도 있다는 것이었다. 짐바브웨 정부는 극심한 인프레이션을 수습하지 못하고, 계속 고액권 발행으로 내닫다가 1조 달러에 이르러 손을 들어 버렸다. 끝내 자기 나라 화폐가 자기 나라에서 통용되지 않는 사태로 갔고, 지금은 그 고액권들이 관광객들에게 유에스(美貨) 1달러에 팔리는 기념딱지처럼 전락했다. 한때 인플레이션이 심할 때는 저녁 한 끼를 먹기 위해 짐바브웨 돈 두 보따리를 들고 가야 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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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우리나라 김광균 시인이 <추일서정(秋日抒情)>이라는 시 첫머리에 “낙엽은 폴란드 망명정부의 지폐”라고 쓴 일이 있는데 짐바브웨 화폐는 낙엽이 아니라 빅토리아 폭포처럼 떨어졌다고 해야할까?

1967년 영국과 남아공으로부터 독립한 로디지아는 1980년 짐바브웨로 새롭게 독립했다. 이 나라 독재 대통령 로버트 무가베는 마오쩌뚱 주의자로 화폐개혁과 영국식민지 시절에 정착한 백인들의 농장 몰수 등을 통해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실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계획경제 실패와 인권탄압으로 전 세계 여론의 비난을 한몸에 받았으며, 높은 인플레이션으로 자기 나라에서 자기 나라 화폐 자체가 통용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짐바브웨에서는 현재 유에스(US) 달러, 남아공의 란드, 유로 달러, 보스와니아의 풀라, 영국의 파운드 등 다섯 가지 화폐가 시장에서 유통되고 있고, 그 가운데 유에스 달러를 기준으로 모든 상거래가 이루어진다고 한다. 호텔 종업원도 얼마라고 밝히기를 꺼려했지만 유에스 달러로 월급을 받는다고 했다.

마르크스주의-사회주의-계획경제-경제파탄-극심한 인플레이션-화폐개혁 그 악순환은 종내 자국화폐의 휴지화로 내달았고, 시장은 상인들 뜻대로 모든 상거래가 외국 화폐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년간 철권통치를 하고 있는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86세)이 최근 홍콩에서 고급양복과 구두 등 초호화 쇼핑을 했다는 신문기사가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작년 1월 무가베의 부인 그레이스 무가베(44세)가 홍콩에서 쇼핑을 하다 자신을 촬영하던 영국 출신의 사진기가 리처드 존을 경호원들과 함께 무자비하게 폭행해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북한의 경제파탄과 인플레이션, 화폐개혁과 그 실패, 김정일 위원장의 사치스런 생활 그리고 그 아들들의 행각 등의 얘기를 이따금 신문에서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씁쓸한 느낌을 어찌할 수 없었다.

글·사진_ 김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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