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말을 못하게 합니다

남편이 말을 못하게 합니다

입력 2010-03-28 00:00
업데이트 2010-03-28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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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지 만 5년이 되는데, 어디 부부모임에라도 갔다 돌아올 때면 남편은 항상 제게 “왜 그런 말을 했느냐, 그런 쓸데없는 말을 뭐하러 하느냐”고 핀잔을 줍니다. 그렇다고 남편이 가부장적인 스타일은 아닙니다. 가정적인 편이고, 집에서 저랑은 얘기를 잘합니다. 그런데 밖에 나가면 말을 잘 안 하고 그냥 웃으며 남 얘기만 듣습니다. 그러니 남들은 남편을 가리켜 인상 좋다, 자상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조금 답답한 게 사실입니다. 원래 저는 좀 재미있는 사람인데, 요즘은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를까 봐 말하기가 두렵습니다. “나는 나가서 내 마음대로 말하고 싶다”고 남편에게 얘기하면 “굳이 남들 다 듣게 말할 필요가 뭐 있느냐, 나한테 하면 되지” 하고 대꾸하는 식입니다. 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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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되면 이렇게 상대를 자기화, 동일화하는 현상이 생깁니다. 여러분이 누군가를 좋아해도 그 사람과 자기를 일치시키는 그런 심리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누가 그 사람을 욕하면 자기가 괜히 기분이 나빠집니다.

그렇듯 부부간에도 서로 일체화되는 현상이 생깁니다. 그래서 내 아내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면 그 사람이 어디서 무슨 얘기를 하든 ‘저 사람 말이 좀 많네’ ‘저 사람은 성격이 저렇구나’ 정도로 넘어갈 일도, 내 아내가 그럴 때는 남편인 자기가 막 부끄러워지는 거예요. 질문하신 분도 아마 남편이 어디 나가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안 해도 좋을 말을 자꾸만 한다면, 괜히 자신이 긴장되고 약간 부끄러워질 겁니다.



우선은 내가 어떤 얘기를 할 때 남편이 문제를 제기하는지를 한번 적어보세요. 그러니까 남편 생각에 맞추느라 입을 닫아버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요.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은 하라는 얘기지요. 그러면서 남편이 “당신 왜 그런 말을 하느냐” 할 때 자신이 어떤 말을 했는지 노트에다 적어보세요.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남편이 무조건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적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남편이 유독 싫어하는 말이 따로 있을 것입니다. 가정사를 꺼내는 것을 싫어하든지, 부모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하든지, 애들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하든지, 안 그러면 보석 얘기나 옷 얘기 하는 것을 싫어하든지, 특정 화제에 대해서만 싫어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그것들을 적어서 통계를 내보면 ‘아, 남편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좀 싫어하는구나’ 하는 걸 깨닫게 되실 겁니다.

만약 남편이 검소하게 사는 인생관을 지니고 있는데, 아내가 모임에서 비싼 화장품 얘기를 하거나 보석 얘기를 자꾸 하면 좀 부담스럽지 않겠습니까. 아니면 남편은 유교적인 가정에서 자란 사람인데 자꾸 집안 얘기를 밖에서 한다면 부담스럽겠지요. 부부 두 사람만 있을 때는 어느 정도 받아줄 수 있는 얘기지만 다른 사람들 앞에서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지요.

질문하신 분 본인은 그런 사실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부부로 같이 살아도 본인이 자란 가정환경과 남편이 자란 가정환경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남편의 마음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결심을 해보십시오. 그저 남편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남편의 마음이 되고자 노력하면, 그 사람의 본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나는 나대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남편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말하는 법을 터득하고, 말투라든지 화제를 바꿀 수 있겠지요. 부부가 같이 모임에 갔는데 두 사람이 모두 즐겁게 지내다 와야지, 누구 한 사람이 불편해서는 안 되겠지요.

물론 질문하신 분의 남편이 제게 질문한다면 남편께는 또 이렇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내 아내’에서 ‘내’를 버리십시오. 그냥 한 여자라고 생각하고 이해하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지금 남편은 꼭 누구를 구속하고 간섭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고, 본인이 지닌 가치관 등에 의지해 상대와 나를 일치시키는 것이니 아내가 그 마음을 한번 잘 헤아려보시기 바랍니다.

남편이 싫어하니까 아예 말을 안 해야겠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그러면 상황을 개선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말하고 싶을 때 하되, 앞서 말한 것처럼 남편이 지적하는 사항을 계속 적어나가세요. 그리고 ‘남편의 마음이 되겠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면 어느덧 남편의 마음이 다 이해가 될 것입니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해하게 되면 문제는 저절로 고쳐집니다.

법륜_ 수행공동체 ‘정토회’의 지도법사이며, ‘평화재단’ 이사장입니다. 전국 각지와 해외를 돌며 ‘즉문즉설 강좌’를 열어 사람들의 고민에 명쾌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2000년 만해상 포교상, 2002년 라몬 막사이사이상을 받았습니다. 지은 책으로 <세상 속 행복 찾기> <일과 수행, 그 아름다운 조화> <답답하면 물어라> <스님, 마음이 불편해요> <행복한 출근길> <날마다 웃는 집> 등이 있습니다.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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