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동독 주민의 승리였다”

“통일은 동독 주민의 승리였다”

입력 2014-12-10 00:00
업데이트 2014-12-10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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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동독 주민의 승리였습니다.”

한스 자이델재단과 한국 평화문제연구소 주최로 1일부터 6일까지 진행된 독일 통일현장연수에서 만난 독일의 전문가들이 하는 한결같은 이야기다.

일반적으로 독일 통일을 서독에 의한 동독 흡수로만 단순화하고 있지만 동독 주민들의 인민봉기와 호네커 서기장 축출에 이어 치러진 총선거에서 통일을 공약으로 내세운 정당연합이 승리하면서 통일이 이뤄질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결국 동독 주민들이 인민봉기를 통해 독재정권을 몰아내고 장벽을 무너뜨리면서 자유선거권을 쟁취했고 뒤이은 선거를 통해 통일이라는 자신들의 운명을 결정했다는 것이다.

실제 독일에서 베를린 장벽 붕괴는 1989년 11월에, 통일은 1990년 10월에 이뤄졌다.

장벽 붕괴 후 1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 당시 소련 등에 통일의 정당성을 강조했고 그 핵심에는 동독 주민의 선택임이 담겼다.

독일 외교부 율리아 드 퀴벨랑 한국 담당 직원은 “영국과 프랑스는 통일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동독 주민의 자유에 대한 열망을 막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서독이 가지고 있던 연방제는 동독이 쉽게 통합되도록 하는데 도움이 됐다.

5개 동독의 주가 서독 연방에 가입을 신청하고 이를 수용하는 방식으로 통일 과정이 전개되면서 비교적 쉽게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바이에른 총리청의 필립 슈틸 박사는 “독일 기본법 23조는 새로운 주가 연방에 가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소개하고 “새로운 주가 연방에 가입하는 방식이어서 동서독이 빠르게 통일을 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통일의 과정에서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독일의 대다수 전문가들은 상호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퀴벨랑씨는 “증오의 관계를 넘어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는 엄청나게 사이가 안 좋았지만 인적교류를 통해 이를 넘어섰다”고 지적했다.

수잔네 루터 한스 자이델재단 국제협력원장은 “동서독과 남북한의 분단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가 가까워지는 것”이라며 “일상에서 어떻게 더 가까워질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권고했다.

통일 이전 동서독간에는 상대방의 TV를 볼 수 있었고 이산가족들간의 왕래가 가능했다.

심지어 서독이 동독에 차관을 제공하면서 경계선 주변에 설치한 지뢰 등을 없애도록 하기도 했다.

한독의원교류협회장인 하르트문트 코시크 의원은 개성공단사업을 지목하며 “독일에는 없었던 사업으로 (이런 사업이 있었다면) 통일이 훨씬 수월했을 것이고 두 체제가 가까워지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남북한이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금강산 관광사업도 좋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통일의 과정만큼이나 험난한 것이 통일 이후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 것이냐는 대목이다.

서로 다른 이질적 체제에서 살아왔고 경제력 격차를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통일상황을 관리할 것이냐가 관건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구동독 지역으로 최근 빠르게 성장하는 지역의 한 곳인 드레스덴시에서 만난 인사들은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드레스덴은 현재 막스플랑크연구소 등 20여개 연구기관을 기반으로 하는 산학협력을 바탕으로 자동차 부품, 바이오 산업, 반도체 산업 등 첨단산업을 유치하며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디르크 힐버트 드레스덴시 경제부시장은 “통일이 되면서 일자리 7만개가 줄어들어 실업률이 20%까지 치솟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독일은 연방차원에서 복지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그 프로그램에 편입돼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작센주 경제진흥공사의 토머스 크뢰거 박사는 “20%를 넘는 실업률과 직업 전환교육을 받는 사람이 25%에 이르면서 통일 이후 주민의 절반이 노는 상황이었다”며 “복지를 통해 서독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고 통일 직후 상황을 설명했다.

결국 통일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상황에서 동독 주민들이 독일 연방이 통일 이전에 마련해 놓았던 사회안전망 속에서 생활고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통일 이전 동독을 떠나 서독을 선택한 이른바 ‘탈동민’에게도 특별한 지원은 이뤄지지 않았고 서독의 취약계층이 누리는 일반적인 복지혜택만 돌아가도록 했다.

마리안펠데 구 동독이탈주민 임시수용소 관계자는 “동독을 탈출한 사람에 대한 특별한 지원체계는 없었다”며 “수용소에서 2주간의 조사를 받은 후에는 서독지역에 거주하면서 사회보장체제에 편입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의 통일에 참고사항일 뿐이다.

기본적으로 독일과 한반도의 분단은 국민의 수용도와 처해진 상황이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국가로서 패전 후 승전국들에 의한 분단을 비교적 순순히 받아들였지만 일제의 식민지였던 한반도의 분단은 철저히 전쟁 유발과 무관하게 진행됐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6·25전쟁까지 더해지면서 상대적으로 교류의 기회가 많았던 동서독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공고한 분단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빌리 랑에 한스자이델재단 아시아국장은 “독일의 상황과 한국의 환경은 차이점이 많다”며 “남북한 모두 통일에 대한 열망이 있을 것인 만큼 상황에 맞춘 현실적 판단을 통해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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