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美 영웅’ 증손자의 ‘한국사랑’

‘한국전쟁 美 영웅’ 증손자의 ‘한국사랑’

입력 2010-06-08 00:00
업데이트 2010-06-08 13:45
  • 글씨 크기 조절
  • 프린트
  • 공유하기
  • 댓글
    14
 증조 할아버지의 자랑스러운 기억을 가슴에 품고 한국 사랑을 이어가는 원어민 교사가 화제다.

 주인공은 60년 전 한국전쟁 당시 흥남부두 철수 때 수많은 피난민 목숨을 구하는데 큰 공을 세운 에드워드 포니(Forney) 대령의 증손자 벤 포니(Ben Forney.24)씨.

 전남 목포 영흥중학교 원어민 교사로 지난해 8월 부임한 포니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곧바로 한·미교육위원단에 원어민 교사 지원을 해 한국에 왔다.

 한국 지원 동기를 묻자 포니 선생은 “연수 프로그램도 좋았지만,할아버지 때문에 왔다..”고 서투른 한국말로 더듬더듬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가 전쟁 철수 작전 때 수많은 피난민을 구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아버지에게 듣고 난 후로 한국에 많은 관심이 있었고,운이 좋게도 원어민 교사로 올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할아버지의 용감한 행동에 자부심을 느끼고 한국 생활을 하고 있다”는 그는 “겉은 미국인이지만 몸 안의 피는 물론 모든 것이 한국인이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포니 선생의 증조부 포니 대령은 부두관리와 상이륙(上離陸) 작전의 전문가다.

 당시 통역을 담당했던 故 현봉학(의학) 박사가 흥남부두에 몰려든 “피난민을 살려달라”고 애원하자 포니 대령은 최고 책임자인 알몬드 소장을 설득해 화물을 줄여 피난민을 태우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1950년 12월 초 중공군의 인해전술로 흥남부두까지 쫓기자 미국 10군단 사령부가 철수 명령을 내렸고 흥남부두에는 피난민 10만명 정도가 몰려와 있었다.

 현봉학 박사의 회고록을 보면 피난민을 태우고자 탱크같은 무기를 버렸다.군함과 화물선·상선 14척이 여러 차례 나눠 피난민 10만명과 미군을 태워 날랐다.1천명 정원인 상륙함에 피난민 1만명이 타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당시 10만명의 10군단 병력을 철수시키는 일도 불투명한데 민간인을 포함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피난민 중 인민군이 섞일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함께 했다.흥남부두 시설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내려졌다.

 하지만,포니 대령은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오는 매우 다급한 상황 속에서도 끈질기게 알몬드 소장을 설득해 귀중한 목숨을 살려내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고 현 박사는 회고록에 적었다.

 포니 대령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나서 한국에 돌아와 3년간 해병대 고문으로 해병대 교육을 담당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고 1965년 사망했다.

 포니 선생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증조부에 대해 어릴 때는 잘 몰랐는데 회계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우연한 기회에 할아버지의 한국 참전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 1월 목포에 온 아버지가 ‘오는 12월 흥남철수작전 6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을 받았고 지난해 10월 친구와 함께 한국에 와 흥남철수 작전비에 새겨진 할아버지 사진을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는 말을 들었다”면서 “시간이 된다면 함께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포니 선생은 한국에 1년 더 머물며 한국어 공부를 더 하고,많은 것을 배워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도 드러냈다.

 영흥중 윤한중 교장은 “포니 선생은 한국 사람이나 다름없다.한국말도 열심히 배우고 산 낙지까지 먹을 정도로 한국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시간을 쪼개 광주와 서울에서 콘서트를 열 정도로 다재다능한,한국을 너무나 사랑하는 젊은이”라고 치켜세웠다.

 연합뉴스
많이 본 뉴스
국민연금 개혁, 당신의 생각은?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연금 개혁과 관련해 ‘보험료율 13%·소득대체율 44%’를 담은 ‘모수개혁’부터 처리하자는 입장을, 국민의힘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각종 특수직역연금을 통합하는 등 연금 구조를 바꾸는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수개혁이 우선이다
구조개혁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모르겠다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