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이 바뀐다…매년 수백개씩 생기는 신어

우리말이 바뀐다…매년 수백개씩 생기는 신어

입력 2010-10-13 00:00
업데이트 2010-10-1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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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발달로 신어 급증세

언어는 시간의 흐름 속에 생성, 성장, 소멸한다. 국어 교과서가 소개하는 언어의 역사성이다.

우리말도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실제 말을 쓰는 사람은 이런 변천을 깨닫기 힘들다. 변화가 워낙 더디고 완만하기 때문이다.

그런 변화 가운데 가장 표나게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신어(新語)의 등장이다. 그 새로움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다 그 뜻을 모르면 당장 의사소통에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 인터넷 발달로 신어 급증세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일간지 등 대중매체를 바탕으로 조사한 신어는 2002년 408개, 2003년 654개, 2004년 629개, 2005년 408개 등이다. 해마다 수백개의 새로운 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신어 가운데에는 한때 쓰이다 이내 종적을 감추는 유행어도 꽤 있다. 일종의 ‘인스턴트 단어’인 셈이다.

하지만 적잖은 부분은 꾸준히 사람들 입에 오르며 표준어로 편입되기도 한다.

올해는 월드컵 축구대회가 열리면서 이와 관련한 신어들이 등장했다.

‘차바타’, ‘차미네이터’, ‘영록바’, ‘인민 루니’, ‘인민 초콜릿’, ‘청날두’, ‘다이버’ 같은 표현들이 그것이다.

또 ‘짐승돌’(짐승+아이돌, 짐승처럼 거칠고 야성적인 매력을 지닌 아이돌), ‘비덩’(비주얼덩어리의 줄임말, 시각적으로 아름답다는 뜻), ‘모태솔로’(태아일 때부터 솔로였다는 뜻으로 이성 교제를 한 번도 안 했음을 일컬음), ‘청년실신’(대학 졸업 후 실업자가 되거나 빌린 등록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다는 뜻), ‘스마트폰 포비아’(스마트폰의 첨단 기능에 적응하지 못해 스마트폰을 두려워하는 심리), ‘앱티즌’(스마트폰의 응용프로그램인 애플리케이션의 앱과 네티즌을 합친 말) 등도 올해 새롭게 등장했다.

또 ‘초콜릿 복근’(근육의 윤곽이 또렷이 드러나는 배 근육)이란 말도 생겼는데 예전엔 같은 대상을 ‘왕자(王字)’나 영어에서 따온 ‘식스팩(six pack)’으로 표현했던 점에 비춰보면 재미있는 변화다.

이런 신어의 출현과 보급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IT의 발달이다.

인터넷, 메신저, 트위터 같은 새 매체들은 엄청난 복제력과 전파력을 무기로 이런 신어의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특정 집단 사이에서만 입에서 입으로 옮겨지며 은어 비슷하게 쓰였을 말조차도 인터넷 공간을 통해 활자화되고 대량으로 복사.전파되면서 그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

‘얼짱’, ‘몸짱’, ‘쌩얼’, ‘된장녀’, ‘지름신’, ‘품절남/녀’, ‘안습’ 같은 단어들은 인터넷 출신이면서 인터넷 바깥에서도 두루 쓰이게 된 경우다.

이런 현상은 국어의 지킴이라 할 국립국어원이 ‘개방형 사전’을 편찬하기로 한 데서도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나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오픈사전’처럼 일반 누리꾼들이 직접 사전 편찬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이운영 연구관은 “기존에 국어원이 펴내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속어나 유행어가 많이 빠져 있어 실제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주변에서 들은 새 단어를 찾아보면 없는 경우가 많다”며 “현실 언어를 반영해 실생활에 사용되는 모든 어휘를 등재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현재 표준국어대사전에 수록된 표제어가 51만여개인데 2012년까지 100만 어휘를 올린다는 게 목표다. 국어 어휘 수가 2배로 늘어나는 셈이니 엄청난 작업이다.

이 연구관은 “말이 예전과 달라서 금세 변하고 많은 말이 쏟아져 나온다”며 “사전 편찬자 몇이 이를 다 파악하기 힘들어 국민이 함께 우리 말 편찬에 참여하도록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 말 줄임과 혼종어도 확산

많은 말이 새로 쏟아지지만 거기에도 어떤 흐름이 있다.

최근 신어에서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는 말을 줄인 축약어가 많다는 점이다.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 흔히 엄마가 자신의 자녀와 비교하는 모범적인 인물),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쩍벌남’(지하철 좌석에서 다리를 벌린 채 앉은 남자 승객), ‘솔까말’(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등이 그런 예다.

심지어 요즘 아이들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고나면 ‘잘먹’(잘먹었습니다)이라고 외친다.

특히 과거엔 한자어에서 주로 이런 축약이 일어나고 순우리말에선 드물었던 반면 최근엔 순우리말에서도 이런 일이 활발해졌다.

또 한자어 축약어는 명사를 줄였던 반면 순우리말이 들어간 축약어는 문장이나 구(句)가 줄어든 경우도 많다.

‘볼매’(볼수록 매력 있다)나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김떡순’(김밥.떡볶이.순대) 등이 그런 축약의 예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은 “한자어뿐 아니라 고유어와 외래어를 섞어 기관의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고 이 경우 말이 길어지다 보니 줄일 필요가 생겨서 순우리말 축약어가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뿌리가 다른 말끼리 합쳐져 새로운 단어가 되는 합성어, 즉 혼종어도 늘고 있다.

다시 말해 과거엔 ‘순우리말+순우리말’ 또는 ‘한자어+한자어’나 ‘외래어+외래어’의 조합이 자연스러웠지만 ‘순우리말+한자어’ 또는 ‘순우리말+외래어’ 조합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새집증후군’, ‘공갈젖꼭지’, ‘땅콩보트’, ‘목폴라’, ‘올챙이송’, ‘당근송’, ‘솔로부대’, ‘셀카족’, ‘유아틱’, 시골틱’, ‘디지털화’, ‘슬림화’ 같은 단어들이 그 예다.

노명희 성균관대 교수는 “예전엔 기원이 같은 말끼리 결합하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최근엔 기원이 다른 단어끼리 결합하는 혼종어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약해지는 한자, 드세지는 영어

한글 전용 교육과 한자어 교육의 약화, 영어 교육의 강화 등은 한국어 내에서 한자어와 영어의 지위를 서서히 바꿔놓고 있다.

노명희 교수는 “예전엔 한자어가 조어력이 뛰어나 신어 형성의 재료로 가장 많이 쓰였으나 한자어가 차지하던 위상이 외래어, 특히 영어로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신어 중엔 한자어가 포함된 신어가 79.5%이고 외래어는 25.9%에 불과했지만 2004년엔 외래어가 포함된 신어가 55.1%로 크게 늘었다.

한자의 위상 약화는 다른 데서도 드러난다.

‘신(辛)라면’의 한자를 몰라 일부 초등학생들이 이를 한글과 형태적으로 비슷한 ‘푸라면’으로 읽는 현상이나 ‘설사(泄瀉)’를 대놓고 말하기 민망하다는 이유로 ‘눈뱀(雪巳)’으로 에둘러 부르는 일 등이 그 사례다.

원래 한자어였는데 이를 순우리말로 오해하고 좀 더 쉬운 한자어 단어로 바꿔치기한 뒤 이를 순우리말로 부르는, 기이한 현상이 빚어진 것이다.

한자어와 영어식 표현이 같이 쓰이다 결국 영어가 살아남거나 한자어와 영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갈라진 경우도 적지 않다. ‘커피숍/다방’, ‘테니스/정구’, ‘와인/포도주’는 그런 예에 해당한다.

이처럼 영어가 한국어 안에서 점차 세력을 넓혀가는 와중에 이를 거스르는 흐름도 있다.

아직은 언어유희의 성격이 짙고, 큰 물줄기를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스타벅스’ 커피숍을 ‘별다방’, ‘커피빈’ 커피숍을 ‘콩다방’으로 부르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한때 미국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을 한국식으로 개명해 부른 데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프리즌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를 ‘석호필’로, ‘CSI(과학수사대)’의 주인공 ‘길 그리섬’, ‘호라시오 케인’ 등을 각각 ‘길 반장’, ‘호 반장’으로 부른 경우다.

노명희 교수는 “새로운 신어들이 등장하고 그 조어법이 다양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언어 현상으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며 “결국 언어 생태계 안에서 일부는 정착하고 일부는 소멸되는 과정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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