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이셔츠맨’ 한명 더 있었다

‘와이셔츠맨’ 한명 더 있었다

입력 2010-11-23 00:00
업데이트 2010-11-23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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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명이 숨지거나 다친 강남구 삼성동 빌딩 방화 사건은 당황한 직원들이 출입문 반대쪽 창가로 몰린데다 오피스텔 특유의 좁은 유리창 때문에 유독가스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해 피해가 커졌다.

 병원에서 치료받던 유모(61)씨가 이날 오전 숨지면서 사망자가 4명으로 늘었고,부상자 24명 가운데 2명은 생명이 위독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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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리고 쓰러지고… 아비규환 22일 오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삼성동 임성빌딩 3층 창문에 한 남성이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매달리고 쓰러지고… 아비규환
22일 오후 방화로 추정되는 화재가 발생한 서울 삼성동 임성빌딩 3층 창문에 한 남성이 매달려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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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용 사다리차를 이용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용 사다리차를 이용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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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대원들이 유독가스를 마신 시민에게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구조대원들이 유독가스를 마신 시민에게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하고 있다.
MBC TV 화면 촬영


 ●출입문 반대쪽으로 몰려 화 키웠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 강남경찰서에 따르면 숨진 방화 피의자 김모(49)씨는 22일 오후 4시53분께 시너 통을 들고 사무실에 들어가 안쪽 소파에 5분가량 앉아있다가 자신의 몸에 시너를 끼얹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사무실 바닥에까지 시너를 뿌리지는 않았지만,방화 직후 소파로 불이 옮아갔고 김씨는 몸에 불이 붙은 채로 출입문 쪽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그쪽으로 화염이 번졌다.

 갑작스런 분신에 놀란 직원들은 본능적으로 김씨에게서 멀리 떨어지려고 출입문 반대쪽으로 몰렸다.당황한 나머지 건물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넓이 320㎡가량의 이 사무실에는 출입문이 한 개밖에 없고 건물 비상구는 출입문 바깥에 있어 대부분 40~50대 여자인 직원들은 불길과 유독성 연기를 뚫고 밖으로 탈출하지 못한 채 창문 바깥으로 몸을 내민 채 구조를 기다려야만 했다.

 ●좁은 건물 창문도 인명피해 키운 원인

 오피스텔 건물 특유의 창문 생김새 때문에 피해가 컸다.

 이 사무실 유리창은 일반 오피스텔과 마찬가지로 가로 80㎝,세로 30㎝가량의 작고 길쭉한 창문을 안에서 밀어올리게 돼 있어 연기가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다.

 불은 사무실 4분의 1가량을 태우고 20여분만에 진화됐지만,사망자 가운데 김씨를 제외한 3명이 유독가스에 질식돼 숨졌고 대부분 부상자도 연기를 마시고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이 건물 2층 건강검진센터에서 일하는 한 간호사는 “갑자기 위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고서 어떤 남자가 뛰어내려 와 119에 전화해달라고 했다.신고하고 나오다 보니 이미 연기가 천장을 타고 들어오고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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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발생한 삼성동 화재 현장에서 사다리에 올라 시민을 구한 남기형(41)씨가 이야기 도중 잠시 사고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발생한 삼성동 화재 현장에서 사다리에 올라 시민을 구한 남기형(41)씨가 이야기 도중 잠시 사고 순간을 떠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시민들이 합세해 감동드라마 연출했다

 연기에 갇힌 이들이 좁은 창문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도움을 애타게 기다리는 동안 인근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과 시민이 소방관들에 앞서 구조에 나서 대형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화재가 발생하고 14분이 지난 5시7분께 근처에서 작업하던 소방차가 처음 현장에 도착해 소방관 4명이 사다리를 올리고서 진화작업을 준비하자,시민들은 곧바로 몸을 던졌다.

 건물 안에 갇혀 유독가스를 피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사람들을 지켜보든 직장인 남기형(41)씨는 더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머지 구조용 사다리를 타고 3층으로 재빠르게 올라갔다.

 남씨는 동료 직원이 들고온 휴대용 소화기를 들고서 검은 연기로 가득 찬 유리창을 수차례 내리쳐 사람이 나올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을 만들었다.

 남씨의 용감한 행동으로 질식해 숨질뻔한 시민들이 가까스로 구조될 수 있었다.

 건물 반대편에서는 불난 사무실 직원인 한동희(31)씨가 활약했다.

 회사 동료 여직원 3명이 건물에 갇혀 고통스러워하고 있었고 이 모습을 본 한씨는 비어 있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망치로 유리창을 깨고 여직원들을 한명 한명 구해냈다.

 아무런 안전조치도 하지 않아 구조과정에서 자신도 추락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여자 3명을 모두 구조할 때까지 사다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남씨는 구조 과정에서 유리창에 베어 오른손 넷째 손가락 인대가 끊어지는 바람에 인근 병원에서 봉합 수술을 받았고,연기를 많이 마셔 심한 고통을 호소한 한씨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상체를 밖으로 내밀고 매달려 있던 이 사무실 여직원은 건물 아래 시민의 도움을 받아 그야말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난간에 매달린 팔의 기운이 다 떨어진 듯 건물 아래로 맥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던 시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팔을 뻗어 안전하게 받아내는 감동드라마를 연출한 것이다.

 이 건물 바로 옆 호텔에 근무하는 이창훈(45)씨는 “창문에 매달린 여자가 힘이 빠졌는지 떨어지려고 했다.일부 시민이 이불을 가져오는 사이 추락하는 것을 본 3명이 맨몸으로 달려들어 받아냈다.이런 식으로 여러 명이 구조됐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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