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경찰관 재판서 드러난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전직 경찰관 재판서 드러난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입력 2014-09-23 00:00
업데이트 2014-09-23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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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 뒤집으려다 무고죄’ 전직 경찰관 항소심서 무죄

2011년 인천 서부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순찰팀장(당시 경위)으로 근무하던 이모(57)씨는 불법 사행성 게임장 단속 업무와 관련,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단속에 대비해 게임장 업주들이 담당 경찰관에게 금품을 건네는 일명 ‘관(官)작업’으로 1천50만원을 게임장 브로커를 통해 받은 혐의였다.

이씨는 1심 재판이 끝난 같은 해 12월 파면됐다. 천직으로 알던 경찰 일을 그만뒀다.

이씨의 뇌물수수 사건은 결국 항소와 상고를 거쳐 대법원까지 갔다. 이씨는 징역 1년에 벌금 600만원의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억울했다. 이씨는 돈을 받은 사실이 없는데도 게임장 브로커 김모(45)씨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이씨에게 돈을 줬다고 주장했다.

2012년 9월 1년 형을 만기복역한 뒤 출소한 이씨는 김씨를 수차례 찾아갔다. 김씨를 설득해 자백을 이끌어 낸 뒤 재심을 청구할 생각이었다. 대법원 판결이 뒤집히면 복직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던 김씨도 이씨의 계속된 설득에 “경찰서에 가서 거짓 증언했다고 말하겠다”며 약속했다.

이 말을 믿은 이씨는 김씨를 위증죄로 경찰에 고소했고, 김씨는 2차례 경찰 조사에서 “뇌물을 줬다고 하면 검찰이 기소하지 않겠다고 해 거짓 진술을 했다”며 “이씨에게 돈을 준 사실이 없다”고 자백했다.

검찰에 송치된 김씨는 1∼2회 조사에서는 경찰 조사 당시 진술을 유지했지만 3회 조사부터는 말을 또 뒤집었다. 뇌물을 준 게 맞다는 것이다.

’양치기 소년’ 같은 김씨의 계속된 진술 번복에 결국 이씨는 무고죄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이씨가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아무런 죄도 없는 김씨를 허위 사실로 고소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 과정에서 과거 이씨의 뇌물사건 당시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부적절한 수사 행태가 드러났다.

김씨는 다른 죄로 복역 중이던 2011년 출소 10여 일을 앞두고 이씨의 뇌물수수 사건과 관련해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으나 불기소 처분됐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기소됐는데 뇌물공여자인 김씨는 아무런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다. 김씨가 ‘이씨에게 뇌물을 줬다’고 진술하자 검찰이 사실상 봐주기 수사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검찰은 김씨의 부탁을 받고 김씨의 아내와 자녀를 검사실로 불러 면회까지 시켜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구속 상태인 피의자의 면회를 검사실에서 주선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검찰은 이씨의 뇌물사건 재판을 앞두고도 증인으로 출석할 김씨를 불러 조서 내용을 재차 보여주는 이해할 수 없는 태도를 보였다.

김씨는 2011년 11월과 이듬해 1월 2차례 법정 증언 전 인천지검에 먼저 들러 조서에 적힌 자신의 진술 내용을 확인한 뒤 법정에서 증언했다.

앞서 2011년 9월 출소 당일에도 인천지검에 불려가 뇌물공여와 관련한 증언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의 무고죄 사건을 담당한 인천지법 형사항소4부(조미옥 부장판사)는 이씨에 대해 징역 10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23일 밝혔다.

재판부는 “출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김씨가 수사기관의 강도 높은 조사를 받자 변호사법위반죄로 추가로 처벌받게 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허위 자백을 했다는 (김씨의 앞선) 진술은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다른 증거로 볼 때 (대법원) 확정판결의 사실 판단을 그대로 채택하기 어렵다고 인정할 때는 (해당 판결을) 배척할 수 있다”고 밝혀 이씨의 뇌물수수 사실도 대법원 판단과 다를 가능성이 있음을 내비쳤다.

이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캐이앤피의 김태진 변호사는 “뇌물을 줬다는 공여자의 진술이 사실상 거짓이라는 판결을 받은 만큼 이를 근거로 이씨의 뇌물수수 사건의 재심을 청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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