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인 스포츠] U-17 여자축구대표 여민지 “우리 실력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피플 인 스포츠] U-17 여자축구대표 여민지 “우리 실력 제대로 보여드릴게요”

입력 2010-08-19 00:00
업데이트 2010-08-1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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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락없는 ‘선머슴’이었다. 그을린 피부에 길지 않은 머리. 벌어진 어깨와 튼실한 허벅지에 건들거리는 걸음걸이. ‘태극소녀’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는 사실 어색했다.

처음엔 몰라봤다. 혹시 그럴까봐 사진을 몇 번이나 보고 갔는데, 역시 그냥 지나쳤다. 17세 이하(U-17) 여자축구대표팀의 ‘부동의 스트라이커’ 여민지(17·함안 대산고)를 몰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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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민지
여민지


그는 지난해 11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17 챔피언십에 대표팀 공격수로 출전, 5경기에서 무려 11골을 몰아 치며 우승을 이끌었다. 경기마다 꾸준히 골을 넣었다. 20세 이하 대표팀의 지소연(19·한양여대)과 똑같다. 플레이 스타일도 똑같다. ‘공을 발에 붙인’ 드리블에 골결정력까지 갖췄다. 바가지형 헤어스타일과 여자축구에 대한 애정까지 닮았다.

새달 9일부터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리는 국제축구연맹(FIFA) U-17 여자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선수들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17일 파주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여민지를 만났다.

평범한 여고 2학년이라고 하기에는 말수가 적었다. 툭툭 내던지는 듯한 경상도 사투리의 단문형 말투였다. “여자애들이랑 노는 것보다 한 살 많은 오빠나 남자애들이랑 공 차는게 더 재미가 있었어요. 골을 넣었을 때 그 기분 때문에 축구를 계속하다 보니 선수가 됐죠.”

부모님도 딸이 운동을 할 거라고 예상은 했단다. “‘아기일 때 안아보면 허벅지가 다른 여자애들과는 남달랐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때는 박세리 선수가 유명해서 집에서는 골프를 하길 원했죠. 그런데 제가 워낙 축구를 좋아하니까 부모님도 반대는 않으셨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여민지는 그전까지 세상에 축구하는 여자는 자기 혼자밖에 없는 줄 알았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축구를 하는 여자애들이 많았다. 대부분 2002년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영향으로 공을 차기 시작했던 친구들. ‘여자’ 축구선수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부터는 축구를 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고, 더 열심히 뛰었다. 여자축구부가 있는 중학교를 거쳐 현재의 대산고에 진학했다. 여민지가 거쳤던 학교의 축구부들은 모두 전국에서 알아주는 명문이 됐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여자축구를 위해 뛴다.

다른 친구들처럼 놀러 다니지 못하는 것이 아쉽단다. 부모님 몰래 분칠도 하고, 립스틱도 바를 나이다. “아직까지 멋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대학교 가면 머리도 기르고 싶고, 꾸며 보고 싶겠죠?”

남자에도 아직 관심 없단다. 어릴 때부터 남자애들과 많이 어울려 놀다보니 신비감이 없다. 공부는 초등학교 때 곧잘 했지만, 공부에 흥미를 느끼기 전에 축구에 빠져버렸다.

훈련과 대회 때문에 수업은 많이 빼먹지만 수행평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은 잘 나오는 편이라고 했다. 서로 민망할까봐 몇 등인지는 굳이 묻지도 답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질문의 핵심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논리정연하게 대답을 잘해서 똑똑한 것 같다고 칭찬했다. 그랬더니 “축구는 몸이 아니라 머리로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보다 먼저 판단하고 움직여야 골을 넣을 수 있거든요.”라고 했다. 최덕주 감독은 상대의 예상보다 반 박자나 한 박자 빠른 슈팅이 여민지의 장점이라고 했다.

그는 “언니들이 잘해서 기대가 높아졌어요. 여자축구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열심히 해서 좋은 성적 내야죠.”라면서 “아마 우승할 것 같아요. 우리 실력 좋아요. 이 기회에 우리가 누군지 제대로 보여드릴께요.”라고 각오를 밝혔다. 무뚝뚝하게 ‘우승’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는 그에게 왠지 믿음이 갔다.

글 장형우기자 zangzak@seoul.co.kr

사진 도준석기자 pado@seoul.co.kr
2010-08-19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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